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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기린그린 2025. 1. 19. 21:31

아가미

P47. 곤은 비좁은 카운터 뒤에서 손바닥만 한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사흘 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주인 부부가 다 읽은 신문이나 주간지를 슈퍼마켓 뒤쪽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어 두면 곤이 그걸 집어다 뒤적거리곤 했다. 곤은 자신이 언제부 터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살아왔는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비좁은 세상을 포화 상태로 채우는 수많은 일들을 꼭 당일 속보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 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 없고 속도를 내면화하여 자기가 곧 속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아다지오와 같은 삶.
그 어떤 행동도 현재를 투영하거나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어 떤 경우라도 과거가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 도 속하지 않는 삶이었다
모두 어제가 되어 부질없어진 인물과 사건의 나열들. 그는 과거를 명시하는 글자들을 단지 할 일이 없어 무료함으로 죽 지 않기 위해서만 내려다보았다. 그가 어제의 세계를 읽는 동 안 실제 세계는 변화와 요동과 전복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고인 물이나 응결된 얼음만큼의 비중 을 간직하며 급속 냉각되어 빙산에 갇힌 의식만을 유지하고 살아갈, 꼭 그만큼의 열량만 있으면 되는 나날들.
그러다 삶의 마지막 날이 온다면 꼭 물속에서 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