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로부터 창조"라는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비신학에 내재한 플라토니즘적 사고 방식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의문의
초점은 관상에 대한 교리였다. 오리게네스 세계관에서, 위로는 "아버지"에서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영적 존재들에 이르기까지 관상은
영적 상하 질서를 묶어주는 결합의 원리였다. "말씀"은 아버지의 오묘하심을 끊임없이 관상함으로써 신성을 확고히 유지하듯이 영적
존재들도 "말씀"을 관상함으로써 신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관상론은 영혼과 신성과의 동족관계가 있기에 관상이 가능했으며 또한
관상을 통하여 동족관계도 실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무로부터 창조"라는 교리에 의하여 성립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았다.
플라톤이나 오리게네스에 있어서 영혼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으며 불멸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세계관에
있어서 존재론상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대한 구별이었다. 영혼은 물질적인 육신과는 반대로 원래 영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로부터 창조"라는 교리는 존재론상의 가장 근본적인 구별을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 두고 있으므로
영혼도 육신도 다같이 피조물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과 공통되는 영역을 전혀 지니지 못하였다. 즉, 영혼과 신성
사이에는 동족관계가 있을 수 없다. 동족관계가 있다면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같은 피조물인 육신과의 사이에 있다.
관상은 이제 더이상 신성과의 동족관계를 실현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오리게네스 계통의 관상론은 그 전제조건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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