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그램 - "삶의 무게는 얼마인가?"
감독 :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1963년 멕시코 시티 출생)
주연 : 숀 펜, 나오미 왓츠, 베니시오 델 토로
사람이 죽으면, 죽기 전보다 21그램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어떤 과학자의 이론을 감독이 인용한 것이다.)
삶이 끝나버릴 때, 21그램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포스터에 써 있는 것처럼 그것이 영혼일까...?
이 영화는 그렇게 쉽게 답을 내놓지 않는다.
불길하고 어둡고, 슬프고 무거운 그림을 잘게 쪼개놓은 퍼즐을
아무렇게나 흐트려놓고, 다시 맞추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는 그렇게 어수선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점점 그림조각을 맞추는 재미를 누리려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이 거두어가는 21그램의 의미를 찾아서 고뇌를 시작하게 된다.
착실하게 앞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통쾌하게 원인을 규명해 주었던
영화 "메멘토"에 비하면 이건 참 불친절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영화를 곱씹어볼수록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잘 완성시켜놓은 퍼즐그림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 움직이는 것처럼
마구 뒤섞인듯 하면서도 정확하게 논리적인 일관성에 도달하는
그 연결고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주인공이 얽혀 있는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출수록
인간 삶에 드리운 그림자는 생각보다 더욱 짙게 내려 앉아있음을 발견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둠이 잉태한 삶에 대한 애착과 갈망은
곧 질식하여 죽을 것만 같은데도, 죽지 않고 더욱 억세게 살아남아서 소리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거야!!!" 라고.
이 말은 영화에서 세 번 반복된다.
죽음의 경계선에 놓여진 각각의 주인공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외치거나, 속삭이는 말이다.
주인공들은 그 말을 부정하고 싶어했지만,
삶은 그들 안에서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니 더욱 끈질기게 지속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면 누구도 내려놓을 수 없는 무게 21그램,
숫자에 우주의 신비가 담겨있다며 수의 의미를 묻는 폴(숀 펜)은
실제 그 무게가 날아가는 순간이 언제인가를 묻는다.
여기 주인공들은 살아 있어도 살아있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폴은 심장이식을 받아 생명을 연장했지만
또다시 곧 멈추게 될 심장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이고,
크리스티나는 자기 삶의 심장과 같았던 남편과 두 딸을 교통사고로 갑자기 잃어버리고
자기 삶을 멈추어버린 여자다.
(그 남편의 심장은 완전히 멈추기 전에 폴의 가슴 속으로 이식되었다.)
"예수 천당"을 외침으로써 평생 전과자로서의 불량한 삶을 구원받으려 했던 잭은
크리스티나의 가족을 죽게 만듦으로써 이제까지 믿음으로 쌓아올린 공로를 다 무너뜨린채
죽는니만도 못한 삶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증오, 복수심, 상실감, 공허,
죄책감 내지는 죄로부터의 해방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어둡고 칙칙한 퍼즐 속에는
밝은 대낮에 폴과 크리스티나가 나눈 대화가 한 줄기 빛처럼 빛나고 있다.
폴이 인용하는 어떤 시인의 말인데,
지구는 두 사람의 만남을 위해 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많이 아껴두었던 말처럼 마지막에 둘이 건네는 "사랑해"라는 말은
이 난해한 영화에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이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감독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임을 알려주는 좋은 단서가 되기도 한다.
너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사랑이 낳아주는 생명...
그것 때문에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두렵지만, 죽음 앞에서도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련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