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E R S T O R Y/느끼는대로

그 마을로 돌아가지 말아라(04')

기린그린 2010. 5. 15. 11:05



오늘 복음말씀에 주님은 소경의 눈을 고쳐주신다. (마르코 8,22-26)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주님께서 한 번 더 손을 얹어주시니 '똑똑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소경을 고쳐 주시기 위해 그를 마을에서 데려내오신다. 
그렇게 마을 밖에서 그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는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다.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셨다는 말과 그 마을로 가지 말라는 말씀이 상충되는 느낌이 남지만, 
나는 그가 소경으로 살던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고향에서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은 예수님 자신의 체험이 반영된 듯 하다. 
변화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 앞에서 주님도 그들과 맞서지 않으셨다. 
완고하게 변하지 않는 선입견과 편견의 폭력으로부터 그분은 홀연히 떠나셨다. 
소경에게도 그걸 바라셨을까?
변화된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얽매는 과거로부터 과감히 떠날 수 있어야하기에....

"왜 그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을까?" 
여태까지는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의 내 처지를 두고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묵상을 하게 되었다. 
누가 크게 출세를 했다면, 
코흘리개 시절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인물이 되어있다면, 
못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착하게 변했다면,
그 사람을 가장 못알아볼 사람들은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라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달라진 주인공은 바로 그 사람들에게 가장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이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비극적으로 이렇게 당연한 반응들은 서로 충돌하고 상처를 일으킨다. 
그때는 소수인 개인이 다수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어있다. 
"감히 인간인 주제에...." 이런 거 때문에 예수님도 죽음까지 몰린 것이 아닌가?

내 꿈에 가끔씩 나를 쫒아다니며, 내 보살핌을 받던 여자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얼마전에는 그 애가 몰라보게 훌쩍 키가 큰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꿈에서 깬 나는 그 사실이 몹시 반가웠다.
나의 어린 자아가 그만큼 자랐다는 확신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이 미래를 향한 걸음이지만, 더욱 가볍게 걸음을 떼어야겠다. 
자꾸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 
열려진 공간과 시간을 향해 더욱 새롭게 나 자신을 던져야겠다. 
두려워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