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 1985>
주인공 윌리 노만은 35년의 외판 사원 경력으로 60이 넘은 가장이다.
자신에게 충실한 아내와 믿음직한 아들 둘...
그러나 그가 간직한 희망은 거의 환상일 뿐이다.
자신이 최고의 세일즈맨이라는 것도 ...
아들이 운동을 잘해서 대학교에 들어가리라는 것도... 모두 그에게는 꿈일 뿐이다.
현실을 압도하는 위대한(?) 꿈...
현실을 직시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소망...
윌리가 들어서는 이 현관은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치열한 사회와 가정을 연결하는 곳이며
나아가 저승으로 향하는 관문이 된다.
늙은 가장의 짐은 이렇듯 무거운데...
집을 사기 위한 할부금도 남아있고
각종 수리비에 대한 청구서와 고장난 가전제품이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내리누른다.
이렇듯 장성한 아들들이 자기 둘레에 앉아
공놀이를 하면서 유쾌하게 놀고
자신의 성공담을 귀담아 들으면서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길 바라지만...
... 이건 아버지의 판타지일 뿐이다.
평생 고생해서 번 돈을 이 낡은 집과 자식들을 위해 남김없이 바쳤건만...
그는 이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집쟁이 영감일 뿐이다.
이렇듯... 이 가족은 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일방적인 판타지 안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들로 얼룩져있다. 이 집처럼 말이다.
제발 자기를 놓아달라고 애원하는 큰 아들 비프...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높은 기대가 자기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고백하는 순간이다.
존 말코비치가 왜 여기에서 큰 아들 역을 하게 되었는지... 무척 공감이 가는 장면이었다.
다른 영화를 통해서는 냉담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보게 된 것이 참 흥미로웠다.
어쨌든... 더스틴 호프만과 존 말코비치가
TV용으로 제작된 영화를 걸작으로 끌어올려준 것 같다.
아들의 격렬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지 못한다.
그리고는 "대단하지 않아?... 비프가 나를 좋아해.
그애는 틀림없이 크게 될거야.."라고 되뇌인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영화라면 이 대목에서 감동적인 화해가 이루어지겠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는다.
항상 성공한 모습으로 찾아와 윌리를 유혹하는 형에 대한 판타지가
2만달러의 보험금을 타기 위한 자살 작전을 실행시키고
그는 끝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통로로 나가버린다.
원작인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80년대나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을 높은 값에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격적인 면과
자식을 향한 부모의 믿음과 사랑이 어떻게 배반당하는가를
잔인하리만치 헤집어서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49년에 발표한 희곡을 초연한 이래 2년간 계속 상연되었으며,
퓰리처상․연극비평가상․앙투아네트 페리상 등 3대 상을 수상한 최초의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 연극계 최대 걸작의 하나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영화 <양철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던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이 제작했다.
독일 감독이어서 그런지...
형제가 사는 방의 미장센은 단번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