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책방

평화 안에 머물러라

기린그린 2010. 5. 25. 13:48


아마도 세상에 가장 흔한 말은 ‘사랑’과 ‘평화’가 아닐까? 

어디에나 널려 있는 말이건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경은 

전쟁과 재난으로 평화를 잃어버린 세상과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내 마음 역시 찬바람 불어대는 겨울날의 나무처럼 앙상하고 황량한 풍경이 먼저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선뜻 잡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평화’라는 말이 주는 따뜻함에 기꺼이 몸을 녹이고 싶었고, 

과연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이끌어줄 성령의 손길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화 안에 머물러라] 이 책은 현재 프랑스의 사제이며 영성가인 자크 필립의 저서로서 

참된 내적 평화에 이르는 길과 그 평화를 유지하며 사는 비법(?)을 전한다. 

특히 우리에게 흔히 닥치는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어떻게 내적 평화를 간직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처음엔 하느님에 관한 추상적인 묘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예상 외로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영적 조언이 담겨 있어서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과 큰 소리 내지 않고 같이 일할 줄 알고, 

어떤 요구나 큰 불평 없이 조용히 지내는 편이라서 그런대로 평화롭게 산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침묵에 나를 속이는 것이기도 했다. 

참된 평화는 소음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주님을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일을 할 때마저도 우리 마음은 근심과 동요로 출렁인다. 

이 일이 잘 되지 않을까봐,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내 약점이 보일까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무엇보다 내 기대를 무너뜨리는 나의 불완전함과 한계에 대한 번민이 평화를 앗아간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평화는 실패나 고통 앞에서도 그분께 온전히 신뢰하고, 

나의 무능과 죄 앞에서도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다.


나의 그림자만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며 어둠을 향해 있던 나에게 

프랑수와 마리 자콥 리베르만의 가르침은 한결 밝고 평화로운 빛으로 나를 이끌어준다.


 “겉으로 보이는 미지근함을 걱정하지 마라. 

그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고 비겁하고 미지근하며, 

여전히 자연적 애착이나 자존심에서 나온 생각이나 슬픔에 사로잡힌다 해도 낙심하거나 기가 꺽이지 마라. 

이 모든 것을 단순히 잊도록 하면서 하느님께 마음을 향하라.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바람대로 활동하시길 

평화롭고 항구하게 열망하는 가운데 그분 앞에 머무르라. 

그대 자신을 잊고 그대의 가난을 지닌 채 자신을 쳐다보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걸으라.”


가톨릭뉴스 - '삶과 신앙' (2010. 1. 26)


- 성바오로딸수도회 김경희 노엘라 수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