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E R S T O R Y/그와 나

영혼의 정비소 (2010 대피정)

기린그린 2010. 5. 26. 00:00

 

 

이렇게 화사한 마음으로 여주에 도착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이처럼 꽃이 만발했고, 찬미와 영광을 노래했다.

그분께서 이곳까지 데려오셨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마음 한 편에서는 불쑥불쑥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지금은 피정하기엔 때가 안좋아.

한참 일하다 오니까 집중도 안되고, 또 피정을 완전히 마치지도 못한채 일하러 가야하니...

마음도 계속 진정이 안되고... 잘 될까?

마치 이곳에 있는게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기분이랄까?

잘 나가는 새 자동차가 억지로 정비소에 묶여있는 기분...이런 거

 

 

 

 

그런데... '정비소'란 말이지?

그렇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그분의 뜻이 있는거겠지...

에라 모르겠다. 경치는 별로지만... 그냥 다 버리고 머물자!!

그리고 "순명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작년의 교훈을 되새기며

베르나르다 수녀님의 말만 따르자...!!

 

 

 

그래도 내 마음에 불어온 봄바람은 꽃가루며 황사까지 몰고와서 물을 흐려놓는다.

그분께 다 돌려드린 줄로 알았던 감사와 영광이

악의 무대 위에서 나를 향해 춤을 추며 해픈 웃음을 보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봄인데도 살아나지 못한고 죽은채 서있는 나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런 나무들이 꽤 여럿 있었다.

봄에, 그렇게 죽어있는 나무를 의식한 것이 처음이었다. 다소 충격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명을 주어도, 

그것을 받을 줄 몰라서, 받기를 거부해서 이렇듯 말라 죽어가는 수도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 비참한 현실을 이 나무들이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전, 대피정 때... 그토록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이 나무들도 새싹을 내지 못한채 서 있었다. 

이들을 두고 나는 또 새로운 여정을 떠나야한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주님께서 데려 올라가신 줄로 알았던 가짜 꽃동산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나는 그분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한 번도 마음이 고요한 적은 없었지만, 꽃가루와 먼지를 털어내느라 부산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찾아가야 할 길만 묵묵히 걸었을 뿐...

 

 

이렇게, 이렇다...할 느낌이나 감동없이 기도에 집중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느낌이나 감정에서 자유로웠기에,

나에게 새겨주시는 그분의 현존을 더 뚜렷하게 의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하루하루 보석처럼 빛나는 은총을 받지 않은 날도 없었다.

 

 

눈물과 슬픔...

생명의 몸...

"내 사랑 안에 머물라"는 말씀... 다른 이의 사랑이 아닌... 정결

 

 

 

새로 얻은 차를 몰고 신호등도 무시하며 과속으로 달리다가

기름이 다 떨어진 줄도 모르고, 

뜨겁게 과열된 엔진은 곧 폭발 직전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정말... 죽을 뻔했다.  

  

 

 

스승 예수여,

제가 당신의 지성과 지혜로 생각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혀로 말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귀로만 듣게 하소서.

제가 당신이 맛들이는 것만 맛보게 하소서.

제 손이 당신의 손이 되게 하소서.

 

제 발이 당신의 걸음 위를 걷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기도로 기도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태도로 대면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이 희생하신 것처럼 제사 드리게 하소서.

제가 사라질 만큼 제가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이 제 안에 있게 하소서.

 

영원토록 하느님을 노래하도록 이 혀가 합당하게 사용되게 하시고,

이 마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쓰여지게 하시며,

가장 비참한 이 죄인을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자비를 원한다"라고 하신 분을

드높이기 위해 합당하게 사용되게 하소서.

 

- Alberi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