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E R S T O R Y/느끼는대로

나비처럼 (04')

기린그린 2010. 5. 15. 11:19



제목은 '나비처럼' 이지만, 지금 머리와 몸이 너무 무겁다. 
하지만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미뤄두면 의미가 엷어지니까
짧게라도 지금 정리해놓는게 낫겠다.
주님은 벌써 부활하셔서 돌아다니시는데,
나만 십자가에 계속 있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성주간이 시작된 지난 월요일 오후,
올들어 처음으로 흰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수녀님 한 분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가셨다. 
오랫동안 꿋꿋하게 암투병을 해오셨는데 결국 뇌까지 퍼져서 숨을 거두신 것이다. 
시신을 모셔오고, 벽제에서 한 줌의 재로 옮겨오기까지 3일간
거의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기록하며 
숨을 거둔 수녀님이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는 현장을 지켜보았지만
'죽음'이란 단어는 영~ 낯설기만 했다. 
멀리 있는 사람을 내 곁에서 볼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안 보이는 곳에 '계시다'는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

수녀님의 주검을 앞에 두고
나는 끊임없이 '삶'을 애착하고, 살아있음의 특권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초라함이
늘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삶이 끝나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희망은 
내 안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그 희망은 바로 '영원의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느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모두 큰 일이다.
더군다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풀어줄 분이 안계시다면
그건 더욱더 큰 일이다.   

수녀님의 장례가 끝난 목요일부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맞아들였다.
꿈에서도 계속 장례는 계속 되었고, 
게다가 내 컴퓨터까지 바이러스로 인해 죽었다가 오늘 다시 살아난 지금, 
너무나 묵직한 사건들의 연속이어서 일주일이 무척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만큼 죽음과 삶에 대해 찐하게 배운 적도 없다. 
한 사람의 죽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한 마음이 되어 슬픔을 이겨내는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죽음으로 증명되는 삶의 발자취가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를 
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수녀님에 대해 이런 저런 표현들을 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을 들으면 나는
'내가 죽으면, 무슨 이야기들을 할까...'하는 생각을 한다. 
과연 내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모습만을 떠올릴까?
별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기억들이 서로 모순 되지 않고 
그리 나쁘지 않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삶의 자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의외'라는 반응들을 많이 보이는데
내 인생이 일관되고 조화로운 그림으로 남으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오래오래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