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04')
집에 며칠동안 휴가를 다녀왔다.
음~~~ 너무 좋은 순간들이 많아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그래도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보자.
이번 휴가 이야기는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아침,
아버지는 나에게 뭔가를 정리할 게 있다면서
작은 종이상자를 하나 가져오셨다.
겉에 이런 메모가 붙어있었다.
"OOO 학창시절 편지, 수첩, 잡기 등... 열어보지 말 것!"
나는 그것들을 집 떠나기 전에 다 없애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12년을 숨어있던 시간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날 온종일 나는 잃어버렸던 시간으로 돌아가 과거를 살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받은 200여통의 편지,
매일의 만남과 사건을 기록해놓은 88, 89, 90년 수첩,
그리고 가장 방황했던 시절의 일기장...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지난날의 슬픔과 아픔,
삶에 대한 두려움과 실망,
그러면서도 실낱처럼 남아있던 희망이 튀어나왔다.
집을 떠남과 동시에 막연한 어둠 속에 남겨두었던 시간들이
다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지금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순수했기에 더 아파하고 방황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날의 상처를 다시 보아야 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벅찬 감동이 더 크게 다가왔다.
우정을 나누고, 나의 사랑을 구하는 편지들을 보며
그때는 왜 내가 받고 있는 사랑에 눈을 뜨지 못했는지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축복되고 아름다운지....
그때는 몰랐던 은총과 사랑이 나를 얼마나 크게 감싸고 있었는지....
문득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사랑스럽게 다가오면서
나는 무척 행복했다.
아버지의 손을 통해 다시 해후한 과거와의 만남이 내게는 운명처럼 여겨진다.
마치 미완성으로 남겨진 한 조각의 그림이 완성된 것처럼
이유를 댈 수 없는 반항과 방황을 일삼았던 때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이제서야 한단락 정리된 기분이다.
칙칙한 누명을 쓴 채 상자 속에 갇혀있던 시간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나기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