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끄시는 분
나는 부드러운 은총의 어루만짐 속에서 서서히 나 자신과 수치감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진실과 대면하기 시작했다. 해답은 단 하나 '나'에게 있었다. 나 혼자 힘으로 너무나 힘겨운 일을 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은 내심 알고 있었다. 내가 수치감을 느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비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능력으로 악을 피하고 모든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 것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시간을 기도하면서 나와 모든 인간을 보살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드려 왔다. 그러면서도 실상 나 자신을 완전히 그분 섭리에 맡기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 하느님께서 내게 건장한 체격과 강인한 마음과 굳센 의지를 주셨다는 사실, 내가 하느님께 받은 육체적 선물 덕분에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늘 그분 뜻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줄곧 그분께 감사드려온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바닥까지 파고들어가 보니 결국 더없이 어려운 시련 속에서 나 자신을 완벽하게 의지하고 있었고 그 결과 실패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이런 깨달음이 죽을 것 같은 죄책감과 수치감에 사로잡히게 한 것이다.
나는 성령께서 개입하실 기회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내게 마련해 주실 답변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할 답변을 생각하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그분의 도움이 내가 기대하던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 사실 그것을 명령조로 요구하고 있었다 - 당황하고 낙담했다. 그분이 나를 저버렸다고 느꼈으며 그래서 미리 정해 둔대로 혼자 힘으로 이겨 보려고 애쓴 것이다.
진정으로 나 자신을 성령께 열어놓지 않았다. 나는 성령께 듣고자 하는 말씀을 오래전에 이미 정해놓았고, 바로 '그 말씀'이 들리지 않자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시간에 성령께서 '그 말씀' 이외에 다른 무슨 말씀을 했다 해도 나는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듣고자 한 것은 오로지 그 한 가지 뿐이었으며, 그에 대한 요구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다른 ㄳ에는 귀 기울일 수 없었던 것이다. (p.109-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