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詩

연탄 한 장 - 안도현

기린그린 2012. 5. 14. 01:04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뜩선뜩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 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지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구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