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Gravity. 2013)
나는 공상과학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인간 내면의 공포와 불안을 형상화시킨 외계인과의 전쟁도 재밌는 볼거리지만, 광활한 우주 속의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와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존재인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언제나 새롭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 <그래비티>는 내 호기심과 관심사를 최고로 충족시켜준 영화가 아닐까 싶다. 마치 내가 우주미아로 버려진 것 같은 영상의 실재감과 수려함도 결코 간과할 수 없지만, 캄캄한 무한대 영역에서 혼자 살아남은 한 인간의 고독하고 처절한 생존기는 우주만큼 위대한 인생의 신비를 숙연하게 역설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도 달랑 두 명만 등장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스톤 박사는 우주선 밖에서 허블망원경을 수리하는 임무를 수행중이다. 우주비행의 초보자인 그녀를 돕기 위해 밖으로 나온 매트는 베테랑다운 여유와 농담을 즐기는데, 순식간에 날아든 우주의 쓰레기파편들과 충돌하면서 우주선은 파괴되고 매트와 스톤 둘 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한정된 산소와 에너지로 힘겹게 다른 우주선을 찾아가보지만 그 역시 폐허가 된지 오래, 결국 매트마저 스톤에게 생명을 양보하고 거대한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스톤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구에 돌아온다는 결말만 본다면 이 영화는 정말 시시한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직접 말했듯이 이 영화는 누구나 겪는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스톤의 정서와 변화과정을 함께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것이 고요함이라고 말했던 스톤, 사실 그녀는 하나뿐인 딸을 하늘에 먼저 보낸 뒤 어두운 침묵 속에 살았다. 라디오를 꺼놓은 채 정처 없이 운전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스톤의 삶은 무중력 상태로 우주를 떠도는 것과 이미 닮아있었다. 한편 매트는 항상 라디오를 켜놓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며 정적뿐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산소 같은 존재다.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스톤과의 연결을 끊지 않고 그녀 스스로 묻어둔 추억과 희망을 다시 살려내도록 부추겨준 매트는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 죽은 듯이 갇혀있던 스톤을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끌어올린다.
끔찍한 재난영화로 광고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따뜻한 인간애와 치유력을 품은 이 영화는 지구라는 엄마뱃속에 탯줄로 연결된 아기를 연상시키는 영화포스터처럼 우리는 모두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언젠가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갇혀 절망하고 있을 때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이 생각났다. 하느님의 천사들인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우주를 떠도는 미아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산소 같은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야곱의 우물]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