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책방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다.

기린그린 2018. 2. 17. 11:23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의 고통을 '고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일. 

그냥 그 사람의 신비와 고통의 가장자리에서 공손하게 가만히 서 있는 일이다. 

그렇게 서 있다보면 자신이 쓸모없고 무력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이런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위안자들처럼 무의식적으로 앞에 있는 저 불쌍한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는 걸 재차 확인하려고 든다. 

그런 느낌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그러나 사실은 나를) 자유롭게 해줄 충고를 하나 하겠다. 

당신이 내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좋아질 것이다. 

당신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당신이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내가 해 줄수 있는 게 없다."

어느 쪽이든 우울증 걸린 상대에게서 멀어짐으로써 자신은 위안을 얻고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 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남의 고통을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용단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며 나서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지만 

실은 고통받는 사람 곁을 지키며 가만히 있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력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친구의 상태와 같아지는 것은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육신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장 바니에도 [희망의 사람들 라르슈]에서 이렇게 말한다. 

"흔히 우리는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느낄 때만, 

그래서 내가 선량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만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질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때 우리는 상대방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워하거나 불안에 빠진 사람 앞에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불안을 진정시키려고 무슨 일이든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습니다. 

고통받는 이와 함께 거하려면, 그리고 십자가 아래 서 있던 마리아처럼 희망 가득한 마음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받아들이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이 십자가 곁을 지키지 못하고 달아난 것은 자기들도 잡혀 죽을 거라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죽어가는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을 회피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욥의 친구들처럼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고 제자들처럼 상황을 회피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키는 영성이 고통받는 이를 구원하리라. 



- 박총 [내 삶을 바꾼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