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한성희
p.66
어쩌다 거절당한 상대방이 서운해하거나 뒤에서 네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소설가 김훈의 말이 도움이 될 거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 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딸아, 김훈처럼 세상이 너를 함부로 대하도록 허락하지 마라. 진정한 이기주의자란 자신의 길을 갈 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에 당당히 맞서라. 그래야 세상이 너를 만만히 보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스스로를 아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너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p.79 - 나르시시스트와 개인주의자
나르시시스트는 나르키소스처럼 오직 자기만을 바라볼 뿐 타인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들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할뿐더러, 타인을 기능적으로만 인식한다. 즉 타인이란 자기의 위대함을 칭찬해 주고, 자기를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 주는 관중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관심이 자기 자신과 자기 이익에만 꽂혀 있기에 그들은 그 누구와도 이원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상호 호혜적이고 상호 의존적인데 나밖에 없는 그들이 어떻게 이런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같은 이유로 나르시시스트들은 아무리 살갑더라도 진정한 친밀함을 만들어 나가기 힘들다. 이처럼 겉으로만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가성 친밀감 pseudo-intimacy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칭하는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도입부에는 다음의 구절이 실려 있다.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잘해 주자. (...)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 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p.90 자기대상 self-object
미국의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헛에 따르면 인간은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안정감과 위로를 주는 대상을 원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먹어야 사는 것처럼 평생 그러한 기능을 제공하는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자신의 일부로 편입되어 기능하는데, 자기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대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자아로 커 나가려면 누구나 자기대상을 가져야 하는데,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그 기능을 해 주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자기대상이 꼭 인격체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충일감을 제공하고, 자신을 지지해 주고 지켜 주는 안전판이 되어 견고하고 통합된 자기 cohesive self로 기능하도록 해 준다면 가치관, 취미, 활동, 직업 모두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p.253 시기심
누군가 너를 시기해서 물어뜯으려고 하면 억울하고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시기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시기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음을 드러내는 반증이자 그만큼 베풀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너에게도 책임은 있다. 욕망의 대상을 먼저 획득한 자는 약자를 배려할 의무가 있다. 그게 가진 자의 윤리이며, 우리는 그걸 배려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의 질투를 받을 만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 말을 하도록 해라.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을 먼저 가졌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겠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또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배려하는 사람이라도, 모르는 사이 자랑의 뉘앙스가 튀어나오곤 한다. 그럴 때 듣는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대에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기쁜 마음은 정말로 너를 아끼는 사람에게만 표현하도록 노력해라.
내가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모임에는 유독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를 받는 한 여성이 있다. 특별히 아름답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주고 편안하게 해 주며 겸손하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그녀였지만 공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며 자기 재능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낮추면서도 보이지 않게 상황을 장악할 줄 하는 영리함과 당당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현명한 겸손함'을 가진다면 시기심에 휘둘려 귀한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p. 259 번아웃 - 무엇이든 지나친 행동 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외부로부터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목표 설정. 자신을 끝내 번아웃의 지경까지 몰고 가는 완벽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전환이다. 번아웃의 개념을 창시한 정신과의사 허버트 프뤼덴버그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목적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다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경험 자체가 사람을 단련한다고 했다. 반대로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노력했다면 안타깝게도 그 경험은 사람을 단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 중에 작은 시련에 와르르 무너지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살다 보면 프뤼덴버그의 말에 참 많이 공감하게 된단다. 우리 주변에도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누구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다. 그들이 실패를 오답 노트 삼아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실패 자체가 그들에게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봤을 때는 실패일지 몰라도, 자신에겐 하나의 가설을 검증해 본 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일에서든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기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때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 경험 자체가 그를 단단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노력도 마찬가지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할 만큼 애쓰고 있다면 그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내면에서부터 설정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노력은 번아웃되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달리는 노력의 결말은 번아웃과 좌절 그리고 불행뿐이다.
p.316 마흔 이후의 아름다움은 라이프스타일로 결정된다.
명품을 사거나 성형을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숨어 있다. 주변 사람들도 다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또래 계층에게 받는 사회적 압력을 '피어 프레셔 peer pressure'라고 한다. 또래 여성들이 갖는 가방을 나도 가짐으로써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그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 안착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명품 가방이란 마치 또래 이름표 같다.
<파리를 떠난 마카롱>의 저자 기욤 에르네는 사회학자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명품 가방을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소비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기준으로 삼는 집단에 속하기 위해, 사물의 차이를 기호로 조작한다."
쉽게 말해, 명품 가방을 살 때 우리는 가방 자체가 아닌 브랜드를 소비한다. 그 브랜드를 매고 있는 자신도 명품이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특정한 대상이나 제품이 아닌 그 안에 든 가치다. 이를 '자존심 고양의 효과 self-esteem enhancing effect'라고 한다. 주변에 유명하고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내 자존심 역시 올라간다고 여기는 것처럼, 명품이라는 가치를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심리다. '~처럼 되고 싶다'는 심리적인 욕망을 구체적인 상품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p.318 마흔이 넘으면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진다. 마흔 전까지는 예쁜 얼굴, 균형잡힌 몸매, 매끈한 피부, 유행에 걸맞는 패션처럼 세상에 통용되는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마흔이 지나면 각자 쌓아 온 인생의 결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얼마나 내 삶을 열심히 살았는가로 판가름 난다.
얼마 전 나는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나이 쉰이 넘어 첫 전시회를 준비하는 여성 화가의 그림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작품을 소개하는 그녀의 모습은 수줍은 소녀처럼 보였다. 이미 얼굴엔 굵은 주름이 잡히고 눈가는 처졌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그녀의 눈빛엔 생기와 젊음이 가득했다. 코코 샤넬이 "스무 살 때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당신의 공적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 말뜻을 깨달았다.
인생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못된 딸이 되라
-울고 싶으면 울어라,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란 없다
-조건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에 대하여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들
-상처투성이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는 법: 잘 부탁하기, 잘 거절하기
-지나가는 일들에 너무 크게 흔들리지 말기를
-어설픈 이기주의자가 아닌 단단한 개인주의자로 살아갈 것
Chapter 2.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지 말 것 - 일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좋은 직장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
-아무도 너에게 슈퍼우먼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40년 동안 일하며 배운 것들
-소심해 보이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완벽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회사라는 조직에서 여성이 성공한다는 것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 인생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Chapter 3. 어떤 삶을 살든 사랑만큼은 미루지 말 것 - 사랑에 대하여
-어떤 삶을 살든 사랑만큼은 미루지 마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남자를 만날 때 꼭 기억해야 할 니체의 질문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결혼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SNS가 외로움까지 치유해 주지는 않는다
-존중과 예의로 대하는 사람만을 사랑할 것
Chapter 4.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은 그냥 쉬게 둘 것 - 감정에 대하여
[자존감] 사랑받는 일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울] 우울은 무너진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라는 신호다
[불안] 지금 불안하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시기심] 누군가 너를 시기한다면 그만큼 네가 성공했다는 뜻이다
[피로]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신으로
[분노] 발끈하지 말고 더 우아하고 단호하게 표현할 것
[독립] 엄마를 떠나 어른으로 살아갈 너에게
Chapter 5. 너무 서두르지 말 것, 그리고 천천히 뜨겁게 살아갈 것 - 인생에 대하여
-더 이상 부모 탓하지 마라
-인생의 마지막에 덜 후회하고 싶다면
-오래 보고 싶은 친구가 된다는 것
-돈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돈 때문에 울게 되는 날이 온다
-마흔 이후의 아름다움은 라이프스타일로 결정된다
-삶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진짜 공부
-인생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