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p.377 시작과 끝
지난밤 꿈속에서 선자는 한수가 자신을 다시 만나러 와줘서 행복했다. 두 사람은 영도의 옛날 집 근처 해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꿈을 떠올리고 있으면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지켜 보는 것 같았다. 이삭과 노아가 떠났는데도 한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게 어떻게 공정한 일이란 말인가? 한수는 도쿄 어딘가의 병원 침대에서 24시간 보살펴주는 간호사들과 딸들의 주의 깊은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아 있었다. 선자는 더 이상 한수를 만나지 않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지만, 꿈속에서는 한수도 선자가 어린 소녀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선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한수도, 심지어는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속에서 다시 마주한 것은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그랬다. 선자는 그렇게 한 여자가 되었다. 한수와 이삭,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오는 순례의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너머로 아름다움과 영광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들은 항상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가끔씩 선자는 철도역 구내매점이나 서점의 창문 앞에서 어린 노아의 작은 손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노아한테서 나던 달콤한 풀 향기가 코끝을 감돌고,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노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순간에는 노아 생각만 할 수 있어서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