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서 깊이로
“컴퓨터를 끈다. 휴대전화도 꺼라.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발을 떼는 손자, 손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순간은 없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
슈미트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스크린 사이에 공백을 창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 그 공백은 스크린을 꺼야만 얻을 수 있다. 스크린에서 벗어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나는 숲으로 갔다. 청천히 살며 오직 삶의 본질만 마주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마침내 죽게 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 나는 숲으로 갔다. 나는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외면은 외면을 만난다. 우리 삶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적인 활동을 멈출 때 모든 대화는 쓸데없는 수다로 전락한다. 내적인 삶이 실패하는 만큼 우리는 더 쉬지 않고 그리고 절망적으로 우체국을 찾는다. 엄청난 양의 편지를 들고 자랑스럽게 우체국른 나서는 가련한 남자는 자기 자신에게서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소로가 월든으로 가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제기도 하다. 월든에서 소로의 임무는 세상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끊어져 있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 살면서 다시 내면을 살피고 일상생활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깊이와 기쁨을 되찾을 수 있는지 보는 것이었다.
소로의 실험은 로버트 리처드슨이 ‘뒷마당 실험 backyard laboratory’이라고 불렀듯이 세상과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구나 따라할 수 있었다. <월든>에서는 분주한 세상 한가운데서도 단순함과 자기 성찰이 머무는 공간, 즉 누구나 자기만의 안식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공간에 대한 욕구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마음과 정신을 위한 특별한 안식처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한때 집이 주었던 특별한 선물을 얻기 위해 우리가 ‘집을 떠나’ 온천에 가고 요가 수업을 듣는 이유다.
맥클루언은 사람들이 기술과 도구에 매혹당하는 이유를 그리스의 나르시스 신화에 빗대어 설명했다. 젊은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 매클루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신화의 요점은 이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보다 자신의 확장된 형태에 매혹된다. 어떤 재료를 통한 확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슷한 맥락으로 매클루언은 인간이 새로운 기술에 매혹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 자신 너머를 비춰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