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위는 안 읽어도 좋지만
읽는 것에 대하여 p.237-239
성서든 신문이든 베스트셀러이든 회소본이든 다르지 않다. 글을 읽는 사람, 그런 풍경을 찍는 사진가의 책을 좋아한다.
앙드레 케르테츠는 1894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파리와 뉴욕에서 사진가로 활동했다. 삼십오 밀리 소형 카메라를 손에 들고 거리와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그의 흑백사진은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인데 신기하게 단정하다. 마치 충분히 계산된듯한 구도다. 그러나 케르테츠가 끌어당긴 우연처럼 생각된다. 힘을 주어 빈틈없는 사진을 찍으려 한 것이 아니라 몸의 힘을 뺀다. 그런 한편 눈만 예민하게 의식한다.
케르테츠가 오랫동안 피사체로 뒤쫓은 대상 중 하나가 무언가를 읽는 사람들이다. 작고 사랑스러운 사진집 [읽는 것에 대하여]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을 찍은 시리즈가 담겨 있다.
성직자가 크고 호사스러운 성서를 펼쳐 읽는다. 맞은편 페이지에는 노숙자가 길에 떨어진 신문을 읽는다. 공원 벤치에서 담배를 입에 문 노인이 두꺼운 책을 읽는다. 소년이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열심히 도감을 보고 있다. 그의 피사체에는 일본 독자들도 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신사와 헌책방 앞에서 책을 고르는 부인도 있다.
온갖 장소에서 각자의 책을 읽는 그와 그녀를 케르테츠는 사랑했다. 그들이 책을 읽는 장소와 내용, 시대와 언어는 다르다. 하지만 종이 위에 실린 텍스트에 몸을 맡기는 독자의 표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끌린 것일지 모른다.
[읽는 것에 대하여] 사진 속의 사람들을 보면 나는 '허, 당신도요?' 하는 기분이 든다. 세계를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에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은밀한 희열이 있다. 뭔가를 읽는 것으로 어딘가로 끌려가 미지와 조우해 웃고, 화내고, 두근두근하고, 그리고 그런 사소한 감촉을 자신 안에 담아두면서 매일을 보내는 책 읽는 사람에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책은 답을 주지는 않아서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약속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글쓴이의 영감을 받으려는 독자들이 책에 바친 시간은 분명 어딘가로 이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 싹이 올라올지 알 수 없는, 오랜 뒤에 보람이 나타나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씨에서 뻗어나가는 뿌리는 자신도 느끼지 못할 만큼 깊게 퍼진다.
'그 책은 영 아니다.' '라이드노벨만 읽는다' 하고 누군가의 독서에 트집을 잡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매해 작아지는 '무언가를 읽는 사람'들이 타는 배는 적어도 같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사진집은 내게 호소한다. 속도와 순위를 경쟁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빠르기로 천천히 배를 저어, 어느 사이에 도착한 커다란 호수에서 서로의 책 읽기를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
p.039 세상을 보는 황홀한 시선
이탈리아 사진가를 한 명 더 소개하자. 무명의 거장 루이지 기리. 1934년에 태어난 기리는 조르조 모란디의 아틀리에를 찍은 사진과 알도 로시의 건축물 사진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책상 위에 놓인 특별할 것 없는 병과 항아리 등 그의 피사체는 항상 매우 과묵하다. 그래서 흔하게 느껴진다.
그의 사진강의집 [사진 수업]. 사실 이 책에서 기리는 화를 낸다. 사물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로 화나는 감정을 표현한다. '이미 봤다고 믿는 사람에게 공통되는 맹목성.' 나는 움찔했다. 이렇게 물건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인데, 하는 변명을 하면서 '봤다'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본 척'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기리는 이렇게 소리친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의 분노의 창끝은 시각지상주의라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일상에도 겨누어질 수 있다. 눈앞에 굴러다니는 기시감을 미지화하기 위해서 기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시선을 씻어내야 한다.
'시선을 씻는다'는 것은 기리의 독자적인 표현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신선한 미지와 우연히 만난 감동으로 접할 수 있을까? 기리의 관점은 '망막의 기능에 의존하지 않는' 시선이다. 기리를 두고 아내 파오라는 말했다. "안경을 닦는 적이 없어요. 항상 렌즈가 뿌연 채로 있죠" 그러면 그는 어떻게 사물을 보았을까. 기리는 '황홀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