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책방

달과 6펜스

기린그린 2023. 12. 20. 20:42

 

8p. 나의 의견으로는, 예술에서 가장 홍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 나는 벨라스케스를 엘 그레코보다 훌륭한 화가로 보지만 그는 너무 인습적이어서 칭찬하려면 맥이 빠진다. 그에 비해 관능적이고 비극적인 저 그리스인은 제 영혼의 비밀을 마치 산 제물을 바치듯 우리에게 바치고 있다. 화가이든 시인이든 음악가이든, 예술가는 숭엄하 고 아름다운 자신의 장식물로써 우리의 심미감을 만족시켜 준다. 하지만 심미감이란 성 본능과 비슷해서 일종의 야만성을 띠게 마련이다. 예술가는 그러한 점에서도 대단한 재능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비밀을 캐다 보면 우리는 탐정 소설에 빠지듯 그 일에 빠지고만다. 그 비밀은 불가해한 우주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가장 대수롭지 않은 것조차 기이하고, 복잡하고, 고뇌에 가득 찬 개성을 보여준다.

 

16p.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책들, 책들이 출판될 때 저자들이 갖는 밝은 희망,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야말로 유익한 수양이 된다. 어떤 책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봐야 한철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 책을 산 독자에게 그저 몇 시간의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또는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애를 썼으며, 얼마나 쓰라린 체험을 하였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서평들을 통해 판단해 보건대, 이들 책 가운데에는 심혈을 기울 여 쓴 좋은 책들이 많다. 구상에 고심한 책도 많다. 심지어는 평생의 노고를 바친 책들도 있다. 내가 여기에서 얻는 가르침은 작가란 글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76p. 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 보세요. 모두가 선생님처럼 행동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아오? 세상 사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살면서도 전혀 불만이 없어요」

한번은 이렇게 비꼬아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런 격언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격언 말입니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돼먹지 않은 헛소리요」

「칸트가 한 말인데요」  「누가 말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이런 인간을 상대로 양심에 호소해 보았자 효과가 있겠는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격이었다. 나는, 양심이란 인간 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를 높은 자리에 앉히고, 급기야는 왕이 매로 어깨를 때릴 때마다 아양을 떠는 신하처럼 자신의 민감한 양심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양심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온갖 독설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그런 사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행위가 불러 일으킬 비난에 정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 무서운 사람을 피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인간이랄 수 없는 괴물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고 뒷걸음 치듯.

내가 작별 인사를 하자 그가 던진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에이미에게 전해 줘요. 날 쫓아와 봤자 소용없다고. 아무튼 여관은 옮길 작정이니 날 찾을 수 없을게요」

「제가 보기엔 말입니다. 부인께서 선생과 헤어진 건 오히려 잘된 것 같습니다」

「여보시오. 제발 내 처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선생이 잘 말해 주었으면 좋겠소. 하지만 여자들이란 워낙 머리가 나빠서」

 

207p.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잘됐다 싶었다. 작품은 사람을 드러내는 법이다. 사람 이란 사교적인 교제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 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 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 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면을 너무 철저히 쓰고 다니다가 정말 그 가면과 같은 인격이 되어 버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은 진짜 모습을 꼼짝없이 드러내고 만다. 겉만 그럴싸한 것은 곧 속이 텅 비어 있음을 나 타낼 뿐이다. 윗가지를 쇳조각처럼 칠한다 해도 쇳조각처럼 보일 리는 없다. 아무리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평범한 정신을 감출 수는 없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날가로운 판찰 자는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내고 만다.

 

221p. 그는 미장이니 목수니 하는 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다.

일은 더 열심히 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생활을 품위 있고 아름답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에도 무관심했다. 명성도 안중에 없었다. 우리들 같으면 대체로 세상일에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만 그는 그러한 유혹에 조금도 꺾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그는 그런 유혹조차 느끼지 못했다. 타협이란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파리에 살면서도 그는 테베 사막에 사는 은자보다 더 고독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 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자기 희생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스트릭랜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296p. 「무엇을 그린 것입니까?」 내가 물었다.

「글쎄요. 아무튼 기이하고 환상적이었어요.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의 상상도랄까.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 동산 같은 거였어요. 뭐랄까, 인간의 형상, 그러니까 남녀 형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고, 숭엄하고 초연하고 아름답고 잔인 자연에 대한 예찬이기도 했어요. 그걸 보면 공간의 무한성과 시간의 영원성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그린 나무 들은 매일 주변에서 보는 야자수며 반얀이며 홍염화며 아보카도 열매나무 같은 것들이었는데, 때문에 그림을 보고 뒤로는 나무들이 달리 보이더군요. 마치 거기에 잡힐 잡힐 하면서도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슨 영혼이나 신비가 숨어 있는 것처럼요. 색채들은 눈에 익은 색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랐죠. 저마다 어떤 고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벌거벗은 남녀 군상은 어떻고요. 사람들은 지상의 사람이고, 땅의 흙으로 빚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지 거룩한 데가 있었어요. 벌거벗은 원시의 본능 상태에 있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니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