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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기린그린 2010. 5. 16. 18:21

오늘날의 시는 더 이상 침묵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의 시는 말로부터, 실로 온갖 말들로부터 와서 온갖 말들에게로 옮아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부분의 경우, 
그 말에 의해서 전달되어야 할 실제의 사실이라고는 결코 없다. 
실제의 사실은 전혀 없으며 그것을 말로써 찾고 있을 뿐이다. 
말이 실제의 사실을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시인은 실제의 사실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실로부터 말을 찾아나선다. 

오늘날 작가의 말은 다른 온갖 말들에게로 간다고 우리는 말했다.
그말은 아주 수많은 것들과 결합할 수 있으며, 
수많은 것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들여 아주 광대해질 수 있다. 
그리하여 본래의 자신 이상으로 보일 수 있다. 
실로 오늘날 작가의 말은 다른 말들을 붙잡아 데려오기 위해서 보내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의 작가는 작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제시하게 되고, 그의 인격은 그 자신이 쓴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작가는 그의 작품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 불일치로 인하여 작가가 위기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예전에도 시인이 그 작품과 다를 수도 있었지만, 
그 인격이 그 작품과 오늘날처럼 그렇게 별개의 것은 아니었다. 
그때에는 작품은 시인의 인격보다 세계의 질서에 속해 있었다. 
그 말을 했던 주체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다만 그 말이 객관적으로 정당한가만이 문제였다. 
따라서 시인의 인격과 그 쓰여진 말 사이의 어떠한 대립도,
어떠한 갈등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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