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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기린그린 2010. 5. 22. 22:56


십수년 전 청주의 작은 소극장에서 본 이 영화를 얼마전에 다시 봤다. 
다시 보니, 옛날에 봤던 건 마구 잘려나간 편집본이었나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더 새롭고 감명 깊었다. 
요즘에 정말 이렇게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영화가 없구나... 또 아쉬워하게 되고.
아마 이때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쉬를 처음 만났던 것 같다. 
풋풋한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소련 공산당 치하에 있던 체코의 프라하,
뇌수술의 권위자인 외과의사 토마스에게 삶은 
자유분방한 여자관계만큼이나 가볍운 것이다. 
출장 수술을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테레사,
다른 사람을 절대 들이지 않는 토마스의 집에 테레사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된다.  



길게 정리하면 좋겠지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의 삶과 무거운 삶이 만나
무거움이 가벼워지고, 가벼움이 무거워지는 조화의 극치에서
그들의 삶은 행복한 웃음 속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 순간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토마스가 이렇게 삶의 극치에 이름과 동시에 떠나버린 순간이
내 가슴에도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다. 
그의 진실한 애인이자 친구인 사비나가 그들의 사망소식을 본 것처럼...

예전에는 그들의 삼각 러브스토리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제 다시 보니, 밀란 쿤데라가 서술한 삶의 교향악이 
필립 카우프만에 의해 정말 멋지게 연주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 때나 지금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왠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았어도 또 보고 싶다. 
이런 영화가 더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쉽고...




젊은 유능한 외과의사인 토마스, 
일상 생활이 무척 심각한 테레사와 자유분방한 사빈나 두 여인. 
그러나 감독 필립 코프만이 보여주는 것은 이들의 사랑놀이가 아니라 
그들이 겪는 사건들, 프라하의 봄, 
소련의 무력개입, 망명, 귀환 등과 관련해서 
인물들이 맞주치게 되는 존재의 변화이다. 
유럽의 자유화 역사를 상징하는 '프라하의 봄'에 펼쳐지는 사랑애의 표현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느끼는 사랑에서 한 개인이 조국에 대해 느끼는 사랑, 
그리고 자유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라는 다양한 층이 겹쳐간다. 
KGB를 필두로 한 소련 탱크 앞에서 
체코 슬로바키아의 국민봉기이 진압된 뒤 정보 기관들은 
지식인들을 말살시키기위해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펼쳐 
의사 토마스는 하루 아침에 유리창닦기로 전략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순환은 
다채로운 음악으로 표현한 체코 음악가 레오 야나첵때문이다. 
이 영화는 자유 체코인들의 삶을 무겁게 만드는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조건에 누추함과 부조리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미국으로 간 사빈나만 남고 모든 인물들이 죽음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라스트 씬은 
이 모든 것을 견디면서도 살아가야하는 무거운 시간 속에서 솜털처럼 사려지고마는 
우리 인생의 상징인 것이다.
- naver 홍성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