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영화관

완득이

기린그린 2012. 4. 28. 23:00

야곱의 우물 2012년 1월호 - 영화이야기

 

완득이(2011)

 

점잖게 앉아서 보기에는 너무도 유쾌하고 때때로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이리저리 자리를 들썩거리며 볼 수밖에 없었던 영화 <완득이>, 다소 비현실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두루 비추면서도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척추장애자로서 카바레의 광대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나고 자란 도완득은 어릴 때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열일곱 살 청소년이다. 카바레가 문을 닫자 아버지는 노점상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자릿세와 텃새에 밀려서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의 약장사로 길을 나선다. 가출조차도 성립되지 않을 만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완득에게 도저히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담임이자 옥탑방 이웃사촌인 동주. 시도 때도 없이 ‘얌마 도완득!’을 불러대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간섭하는 그는 완득에게 원수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교회에서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겠는가?

하지만 동주의 거칠고 지나친 간섭은 곧 외톨이 완득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난다.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가난을 탓하며 굶어죽는 게 진짜 부끄러운 일이라며 완득에게 진정으로 맞서야할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동주는 완득에게 진정한 인생선배요 스승이다. 자기 재산을 털어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을주민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고,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교실에서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동주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한국사회가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선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영화는 사건의 내용보다 각 사람들의 됨됨이가 더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완득의 아버지는 이 영화의 인물 중에 가장 성숙하고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다. 비록 돈 때문에 자기와 결혼한 외국 여자라 해도 그녀의 인격자체를 존중했고 완득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으며, 길에서 떠도는 민구를 거두어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주변 관계는 공경과 이해, 대화와 화해의 끈으로 이어진다. 빈자와 이민자들을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이 억지스러운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과장된 비극 또는 웃지 못할 희극으로 끝나버린 것을 생각해보면, 보다 건전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그들이 바로 우리임을 받아들이게 해준 이 영화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나에게 가장 오랜 잔상을 남긴 것은 이 영화 속의 교회다. 제단 벽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글자만 걸려있을 뿐 단 한 번도 설교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동주와 이주노동자들이 만나는 장소인 이곳은 실제로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살아있는 곳,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들의 안식처이며 나눔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곳, 완득이가 다니는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M E D I A > 영화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낯선 이를 친구로 <비지터> <웰컴> <르 아브르>  (0) 2012.12.12
달팽이의 별  (0) 2012.04.28
성 아우구스티누스  (0) 2012.04.28
천국의 속삭임  (0) 2012.01.24
시사IN <세상의 모든 계절>  (0) 201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