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詩

그는 - 정호승

기린그린 2013. 3. 28. 22:07


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끊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촞불을 끄고 돌아가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 정 호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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