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선으로 보는 인생관이 있고, 점의 집합으로 보는 인생관이 있습니다. 전자는 원인과 결과로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미래가 과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프로이트는 어렸을 때의 경험이 무의식에 축적되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선언한 셈이죠.
인간의 행동이 과거에 의해 결정된다는 면에서 선 그리기 게임이나 프로이트의 심리관은 일견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인생 후반의 삶은 전반부의 일들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 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점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에서 점은 여러 사건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을 살았고 하루에 100개의 사건이 있었다면 한 사람의 삶에서 292만 개의 사건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작은 사건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수 있고, 큰 사건만 추린다면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무의미하게 나열되어 있을 수도 있고, 마치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처럼 의미 있는 모습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점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다라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점들의 연결(connecting the dots)을 강조했습니다. 우연인듯한 인생의 점들이 의미 있게 연결되는 게 삶이라고 했죠.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양부모를 만난 것, 대학 중퇴, 글씨체 공부, 애플 창업 등)이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모두 연결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점을 찍는 데 최선을 다하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점이 되니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선과 점의 인생관은 모양을 만들어간다는 데 있어서는 유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선의 인생관은 자신이 과거에 그린 그림을 자꾸만 쳐다보게 만듭니다. 이미 그려진 그림은 지울 수 없어서 미래에 과거를 재해석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에 점의 인생관은 과거에 찍었던 점들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점에 집중하게 합니다. 점으로 이루어진 집합은 세월이 흘러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거나 관점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점의 집합으로 보는 사람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점을 찍을 때도 완벽한 해법을 찾지 않습니다. 어차피 현재의 눈으로는 완벽한 점의 위치를 알 수 없으니까요.
점의 인생관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점의 인생관은 과거의 선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성공한 그림에 집착하면 변화한 삶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대다수 은퇴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점의 인생관으로 세상을 보면 과거의 성공뿐 아니라 과거의 실패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무엇을 완성하고 이루어야 한다는 데 집착할 필요도 사라집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우리 뜻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언제 갑자기 아플지 혹은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어집니다. 원대한 계획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언제 아플지 언제 죽을지 몰라 초조해하고 삶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점의 인생관으로 보면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여기’에 최선을 다해 점을 찍으면 됩니다. 그 점들이 언제 끝났든지 간에 의미 있게 연결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 하늘의 몫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가까이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 끝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훌륭한 그림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십시오. 옛 사람들은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을 이어 그림을 만들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도 삶이라는 캔버스에 찍힌 점을 별자리를 풀어내듯 새롭게 그려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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