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T U D Y/Bibliotherapy

감정저널 "섭섭씨 이야기"

기린그린 2012. 2. 1. 18:21

 “섭섭씨” (2012. 1. 2)


섭섭씨가 유독 자주 출현한 건 2011년이었어. 

그는 반들반들하고 야리구리한 옷감으로 재단한 양복은 그를 더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이게 만들었는데, 

그는 그 옷이 세련된 거라고 믿는지... 

푸르둥둥한 빛이 감도는 양복에 잘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다녔지. 

마치 모자에 자존심을 올인했는지... 모자는 좀 비싸보이더라구.


나는 섭섭씨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 

그냥 그런 딱한 존재가 있는가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부쩍 내 옆에 붙어다니지 뭐야. 

내가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마음 먹고 뭔가를 했을 때 그는 제일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보고 보란 듯이 웃어. 

그 얼굴을 마주치는게 참 싫은데, 그와 눈이 마주치면 그 순간까지 참았던 섭섭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힘들게 해. 

그는 정말 이간질의 대가라고 할 수 있지.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져.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더 자신감에 넘쳐서 내가 화를 내야된다고 소리없이 내 마음을 부추겨. 표현해야 살 수 있다고...

그래서 그가 가르쳐준대로 해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오해했던 게 드러나서 창피한 지경이 되곤 하지. 

그럴 때 섭섭씨는 어디 있냐고? 

그냥 도망가버리는 것 같애. 


사실 그의 모습은 초라하고 슬퍼보여도 그가 내 마음과 행동을 조종하게 되면 아주 영리한 독재자처럼 변하거든. 

복수하게 만들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감정을 담아서 어떻게든 상대방의 마음에 흠집이라도 내야된다고 가르치지.

요즘도 자주 나타나. 

그가 나한테 뭐라고 하던, 아무말도 하지 않던 모든 경우에 내 앞에 나타나는 것 같아. 

정말 속상한데... 그의 모습이 보이니까 좀 시원해지는 것 같다.

섭섭씨는 사기꾼 기질이 있어. 그래서 자주 속지. 

섭섭씨는 이기적이야. 그래서 결국은 내 것을 챙기게 만들어. 

그렇게 되면 기쁨을 잃어버리지. 

섭섭씨가 아무리 불쌍하게 동정을 구하면서 내 앞을 지나가도, 이제는 그냥 보내줘야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