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이 아이는 이제 무엇인가?
공을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보았다, 공이
경쾌하게 튀며 길 아래로 굴러가
경쾌하게 물에 빠지는 것을!
'걱정 마, 다른 공이 얼마든지 있어.'라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
꼼짝 않고 서서 몸을 떨며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공과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이 굴러가
항구에 가라앉는 것을.
나는 그 아이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새 공을 살 돈이나 다른 공은 필요 없다, 이제
아이는 처음으로 소유의 세계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공을 갖고
공은 언제나 잃기 마련이란다, 아이야.
그리고 아무도 공을 다시 살 수 없지.
돈은 외부의 것이니까.
아이는 실의에 찬 눈 뒤편에서 배우고 있다.
상실을 자각하고, 딛고 일어서는 법을.
모든 사람이 어느 날엔가는 알게 되는,
그리고 대부분은 자주 배우게 되는
딛고 일어서는 법을.
- 존 베리먼 <공의 노래> 일부 (류시화 옮김)
어린 시절 숲에서 잃어버린 작은 고무공을 몇 년 후 그 자리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공은 삭아서 바람이 빠진 채 내 유년기의 일부와 함께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아직 어렸지만 그때 나는 어떤 것을 자각한 것 같다. 가게에서 똑같은 공을 다시 산다고 해도 그것은 같은 공일 수가 없다는 것을. 인생에는 한번 잃으면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마치 밖에서 창문으로 내 방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문이 영원히 닫혀 들어갈 수 없게 된 방을. 하지만 창문으로 들여다볼 만큼은 키가 커져 있었다.
저녁이 밀려오는 거리에서 시인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놀다가 공을 놓쳤고, 공은 거리를 굴러 내려가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실의에 차서 슬픈 눈으로 길 아래쪽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가? 어떤 말이 필요한가? 누구나 그렇듯 아이도 상실의 진리를 자각하고, 곧 딛고 일어날 텐데. 그리고 다시 다른 것들을 소유해 나갈 텐데. 마음 밑바닥에 상실감을 안고서 세상을 다시 경험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삶이니까.
딜런 토머스, 로버트 로웰과 함께 20세기 미국 시단을 주도한 존 베리먼(1914~1972)은 절친했던 두 시인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천재 시인이었다. 열두 살 때 부모의 파산과 의혹에 찬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고등학교에서의 집단 폭행으로 자살 시도 등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소년기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유전으로 내려온 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두 번의 이혼, 십 년 넘게 이어진 수면제와 진통제 과용, 숱한 입원, 심한 기억 상실과 무수한 환각 등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상실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딛고 일어선 것이 그의 삶을 이루어 나갔다. 고등학교를 1년 먼저 우등으로 졸업하고 명문 콜럼비아대학에 입학했으며, 미국 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클럽인 필로렉시안 협회 회장이 되었다. 졸업 후에는 장학금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2년간 공부하면서 예이츠, T. S. 엘리엇 등 쟁쟁한 시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베리먼은 모든 시련을 창작에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훌륭한 성취를 이루는 데 가장 큰 운은 시련이라고 나는 믿는다. 시련 없이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예술가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에게는 시련이 요구된다. 내 생각에는, 실제로 죽지 않을 만큼 호된 시련을 겪을수록 예술가에게는 가장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때 그는 창작에 몰두할 수 있다. 베토벤의 청각 상실, 고야의 청각 상실, 밀턴의 시력 상실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나의 미래의 시 창작 역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흠, 시나 한 편 써 볼까?' 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얼굴을 얻어맞고, 바닥에 내던져지고, 불치병에 걸리는 등 치매에만 걸리지 않으면 온갖 극심한 시련을 겪을 때 가능하다."
"시인은 모든 것을 시의 소재로 만들 수 있다."라고 베리먼은 말했다. 그에게 시인으로서의 큰 명성을 안겨 준 대표 시집 <77편의 꿈 노래>도 조울증 때문에 10년에 걸친 정신분석과 꿈 분석을 받은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감정적 혼란과 고난이 다양한 만큼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독특하고 다양한 시적 기법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미의 대가, 눈송이의 장인, 모방을 불허하는 고안자시며 너무나 매력적인 이 지구를 허락하신 분이여, 이와 같은 선물을 주시니 감사하다.'라고 쓸 수 있었다.
시 <시대의 한 시점>에서 베리먼은 노래한다.
'낯선 사람에게 이해시켜라,
우리 중 누구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두려움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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