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E R S T O R Y/사진일기

새해 첫 날 (06')

기린그린 2010. 5. 16. 10:56






오늘 점심당번이어서 식사준비를 하다가
주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싸~ 하면서도 축축한 공기가
기분좋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점심 먹고, 뒷산에 갔다.
모든 당번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무가 그리운 마음으로....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대던 평소와는 다르게
한적해진 작은 산.






천천히, 야금야금 길지 않은 산책길을 걸으면서
참 많은 단어들이 나에게 부딪쳤다가는 사라졌다.
멀리 사라져버렸는지... 진짜 기억이 잘 안나네!!





아, 중요한 기억 하나...
 벌써 10년도 더 오래된 꿈에서 본 풍경에
다시 들어온 것 같았다.
죽은듯 앙상한 나무들이 서 있는  안개 자욱한 산에
세 명의 할아버지들이 모여
덧없이 가버리는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던 곳...
그러나 오늘 들어선 현실 속의 산은
봄을 기다리는 생명으로 충만한 것 같았다.






이미 왔던 곳이면서도 늘 새로워보이는 길
그 모퉁이 뒤가 궁금해지는 길...
그것은 마치 어떤 '만남'하고도 흡사하다.
다 알고 있다고, 이미 가보았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보여주는 그 새로움에, 그 매력과 어둠에
나는 놀라고마는 것이다.

그리고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반짝거리는 행복이 날아다니던 밤에
예쁜 잔에 부드러운 거품 아래 담긴 달콤한 커피에 대한 그리움...

커피자판기라도 있었으면 진짜 좋았을텐데...
그게 참 아쉬웠다.






늘 도서관에 갈 때 지나던 길인데
오늘은 정말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지금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정신없이 맞이한 하루,
허겁지겁 달려간 새해 첫미사,

기말리포트에 이어서 성탄장식, 기도당번 ...
마지막 날까지 무척 빡빡하게 지냈던 후유증을 탓하면
여전히 정신없이 맞이한 새해 첫날의 불충이
좀 가볍게 느껴질까? 

이렇게 맛있는 공기를 마시면서
오랜만에 혼자 즐긴 산책 후에는
아쉽게도 두통에 짓눌려 오후 기도마저 놓쳐버렸다.
이 또한 그 탓을 한다면....
좀 가벼워질까?






뭐... 가벼워지지 않아도 된다.
이미 또 하루의 과거가 되어버리고,
오늘처럼 내일을 또 맞이해야하니까...
아쉬워도...매이지 말자.




카메라를 들이대니 떼로 몰려든 비둘기들...
오늘만큼은 낭만적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