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 세상은 오래전부터 권태와 친숙했고 권태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조건이라고 말들 할지도 모른다. 권태의 씨앗은 이미 온사방에 흩어져 싹이 나기 좋은 땅 여기저기에서 발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권태, 이 나병의 이러한 감염과 확산을 사람들이 이토록 겪은 적은 여태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궁극에 이르지 못한 채 뒤틀려 버린 절망, 절망의 이 추한 형태는 분명 발효하며 와해되어 가는 그리스도교계 전체의 모습이다.
p.32 (토르시 신부) "우리 아주 어렸을 때 시절이 너무나 그윽하고 환히 빛나 보이는 건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 어린이도 누구나 그렇듯 괴로움이 있고, 또 어린이는 고통과 병에 그토록 나약한 존재인데도 말이야! 어린 시절과 끝점에 이른 노년기야말로 인간이 겪는 양대 시련기인 것 같아. 그런데 어린이는 바로 자신의 무력감에서 제 기쁨의 근본원리를 겸허하게 이끌어 내는 것이지. 어린이는 모든 것을 제 어미에게 맡기지. 제 현재, 과거, 미래를. 알아듣지? 제 온 목숨, 인생 전체가 어머니의 시선 속에 들어있는데, 그 시선은 바로 미소이지. 그러니 여보게, 우리가 하던 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교회는 사람들에게 바로 이런 지고한 안정감을 줄 수 있었을 거야.
p.39 그 누구도 읽지 않을 이 글들을 램프 불 아래에서 끄적거리면서 나는 분명 하느님의 현존 아닌 다른 어떤 비가시적인 현존을 느꼈다. 그것은 내 모습을 한 어떤 벗의 현존었던가. 나와는 아주 분명히 구별되고 다른 본질을 지닌... 어제 저녁은 이 현존감이 하도 강하게 느껴져서 부끄럽게도 갑자기 울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저 낯모를 가상의 경청자에게 내 머리를 기울여 얹고 싶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p.63 (동창의 편지) 나는 결핵 요양원에서 18개월을 막 보내고 나온 참이네. 그 기간은 인생의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네. 조금만 성찰을 깊이 한다면 자네도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르리라고 믿는다네. "아우레아 메디오크리타스 Aurea mediocritas, 중도지덕(中道之德) 평범이 좋은 것이라는 뜻" 이 라틴어 두 음절이 내 포부는 소박하다는 것, 나는 반항아가 아니라는 증거를 자네에게 줄 수 있겠지. 반항아이기는커녕 우리 은사님들에 대해 아주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네. 교리에 무슨 고약한 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받으셨던 교육, 달리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수해 준 교육에서 온갖 잘못이 나온 것이야. 그런 교육이 우리를 개인주의자, 고립된 사람들로 만들어 놓았지. 요컨대 한 번도 유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그저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지. 괴로움, 기쁨을 말일세. 우리는 '인생'을 누리는 대신 그걸 만들어 내는 꼴이었어. 우리네 편협했던 세상에서 벗어나 단 한 발짝이라도 떼 놓으려면 그전에 우리는 모든 것을 출발점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네. 그건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자존심의 희생 없이는 되지 않지. 그러나 고독은 한층 더 고통스럽다네. 자네도 언젠가 알게 될걸세.
p.90 (토르시 신부) "내가 느끼기로 천주님은 자네를 부르셨네. 그 점에는 추호의 의심이 들지 않네. 체격으로 봐서는 자네는 천성적으로 딱 수도자라네. 그야 그렇고말고! 자네는 어깨가 떡 벌어지지는 못했어도 대신 용기가 있어서 보병 노릇 할 자격이 있어.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이르는 말 잊지 말게. 절대 후방으로 이송 당해선 안 되네. 한번 병실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 거야. 자네는 소모전에 적합하지 않거든. 끝까지 전진하게. 그리고 언젠가 참호 속에서 배낭을 짊어진 채 조용히 인생을 끝마치도록 하게."
p.123 내가 침묵을 계속 지키자 약간 거북해진 그(토르시 신부)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나는 경험이 적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투에서 대번에 어떤 낌새, 영혼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낌새를 분명 느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를 설복시키거나 진정시키는 데 필요한 적절한 말을 그때 찾아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말을 모른다. 대신 인간에게서 나오는 진실한 고통은 우선 하느님께 속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나는 겸손하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 마음에 받아 안고 내 것으로 삼아 사랑해 보려 애쓴다. 그럴 즈음 나는 "함께하다"라는 흔해져 버린 표현의 숨은 뜻을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고통에 나는 지금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p.151 똑같은 고독, 똑같은 침묵, 그런데 이번에는 장애물을 통과한다거나 혹은 그걸 에둘러 갈 수 있으리란 그 어떤 희망도 없다. 아니 장애물이란 것이 있지도 않다. 아무것도 없을 뿐. 아아! 나는 밤을 내쉬고 밤을 들이마신다. 밤은 어떤 식으로든 감히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영혼에 난 틈새를 통해 내 안에 들어앉는다. 나 자신이 밤이다.
나는 이런 고뇌와 유사한 것을 겪은 이들이 있겠거니 애써 생각해 본다. 그러나 미지의 그이들에 대해 아무런 측은지심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고독, 그 완벽한 고독을 나는 증오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 어떤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만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나는 침대 발치에서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아, 물론 나는 이런 처신의 효과를 믿을 만큼 유치하지는 않다. 나는 그저 전적인 수용과 내맡김의 그 자세를 정말 취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공허와 허무의 구렁텅이 바로 곁에 마치 걸인처럼, 주정뱅이처럼, 죽은 이처럼 누워서 누가 나를 거두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작의 첫 순간부터, 내 입술이 바닥에 닿기도 전부터, 나는 이 거짓에 수치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던 것이다.
p.240 (백작부인에게) "지옥이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바로 그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어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사랑하느니 하느님 밖에서 사랑하느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는 물 속에 비친 달의 그림자를 향해 두 팔을 내미는 미치광이 격입니다. 제 생각을 이리 서투르게 표현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p.244 (백작부인의 편지) 신부님, 신부님께서 저를 어떤 상태에 둔 채 가셨는지 신부님은 상상치 못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심리적 문제는 신부님 관심 밖이리라 싶습니다. 무어라 말씀드릴 수 있을지요? 그 조그만 아기에 대한 절망적 추억이 저를 모든 것에서 별리하여 무서운 고독 속으로 몰아넣어 두고 있었는데 이제 다른 어린아이 하나가 이 고독에서 저를 끌어내 준 것같이 생각됩니다. 제가 신부님을 이처럼 어린아이로 취급한다 해서 새삼 감정 상하는 일이 되지는 않겠지요? 신부님은 정녕 어린이시니까요. 좋으신 주님께서 신부님을 그대로, 또 영원히 지켜 주시기를!
p.252 "평안히 있을지어다."라고 나는 부인에게 강복했고 그녀는 이 평화를 무릎을 꿇고 받아들였더랬다. 부인께서는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실지어다! 그것을 그녀에게 준 것이 바로 나라니! 자신은 정작 지니지 못한 것을 이처럼 선물로 줄 수 있다니. 오, 우리들 두 빈손의 그윽한 기적이여! 내 마음속에서 죽어가던 희망이 부인의 마음 안에 되살아났고 내가 단연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기도의 정신도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되안겨 주셨으니, 어쩌면 그것도 나의 이름으로... 부인께서는 이것도 보존하시기를, 모두를 간직하시기를! 주님, 오직 당신만이 우리를 헐벗게 비워 낼 수 있으시매, 저는 이렇게 모든 것을 앗겼나이다. 연유인즉 당신의 무서운 배려, 당신의 놀랍도록 무서운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나이다.
p.273 (아르센 성당지기와 대화)
"하지만 아르센, 공증인은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나는 하느님을 위해 일합니다. 사람들이 제 홀로 회심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 그는 지팡이를 가져다가 턱을 그 손잡이 위에 얹었다. 그런 채 잠이 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회심이라... 회심이라..."하며 그는 마침내 다시 운을 떼었다. "나는 70 하고도 3년을 더 살았지만 내 눈으로 그런 일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태어난 대로 각자 살다가 또 그렇게 죽어 가죠. 우리 집안 사람들 모두가 성당에 속했습니다. 조부는 리용에서 성당 종치기였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윌만 신부님 댁 식복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사람 중 성사를 받지 않고 죽은 이는 없습니다. 혈통이 그런 거죠.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당신은 하늘나라에서 그분들을 다 만날 겁니다."라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일손을 놀리면서 그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다시 듣게 되리라는 기대를 버렸을 때 그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지친 목소리, 저 아득한 세월의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신탁인 양 마지막 말을 뱉어 놓았다. "사람이 죽으면 다 끝장입지요, 뭐."
p.301 ... 하늘의 진노를 막아 준 조그만 손을 가지신 그 숭고한 피조물, 은총이 가득한 그분의 두 손... 나는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손은 보였다가 또 안 보이기도 했다. 통증이 워낙 심해졌고 몸은 다시 미끌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그 두 손 중 하나를 내 손으로 잡았다. 그것은 어린이의 손, 이미 일과 빨래로 거칠어진 가난한 어린이의 손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꿈이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을 감았던 것이 지금 기억난다.
올리비에와 자동차를 같이 탄 장면 -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젊음을 만끽함
위암 선고
p.386 하느님, 저는 모든 것을 당신께 기꺼이 바치나이다. 다만 저는 제대로 바치는 방법도 몰라 마치 앗기는 대로 두는 것 같은 모습으로 바치나이다. 저의 최선은 가만히 있는 것이나이다. 저는 바칠 줄 모르오나 당신, 당신께서는 취하실 줄 아시기 때문이외다.... 하오나 한 번만은, 오직 이 한 번만이라도 저는 '당신'을 향해 너그러이 손 큰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얼마나 소망하였던지요!
... 나는 그 어느 것에도 허세 부리며 도전하고 싶지 않다. 내 격에 맞는 영웅심은 그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힘이 없는 만큼 나는 이제 내 죽음은 작은 것이기를, 가능한한 작은 죽음이어서 그것이 내가 살아 오면서 겪은 다른 사건과 특별히 구분도 안 되는 것이기를 소망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토르시의 본당 신부님 같은 분의 포용력과 우정을 누린 것도 나의 천성적인 서투름 때문이다. 나의 서투름은 어쩌면 그런 후의를 받기에 부당한 것은 아닌 듯하다. 나의 서투름은 어쩌면 어린아이 같은 서투름일까? 내가 자신을 때로 정녕 가혹하게 판단하기는 하지만 내가 가난의 정신을 가진 것을 의심한 적은 결코 없다. 어린이 정신은 가난의 정신과 닮았다. 그 둘은 분명 하나를 이룬다.
p. 397 (동창의 여인과 대화)
"그러나 그가 만약..." 내가 감히 말을 맺을 엄두를 내지 못하자 그녀는 나 대신 말을 맺어 주었다. 많은 이들에게는 무심하게 들렸겠지만 나로서는 잘 아는, 그리고 내 안에서 아주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 나이를 알 수 없는 목소리, 주정꾼을 어르고 말 안 듣는 어린 것들을 꾸짖고 기저귀도 차지 못한 젖먹이를 달래 주고 무자비한 장사치들과 다투기도 하며 집정관에게 통사정을 하고 임종하는 이들을 평온케 해 주는 그 목소리, 수세기를 내려오면서도 분명 언제고 변함없는 주부이자 아낙네의 목소리, 이 세상의 온갖 불행에 의연히 대항하는 바로 그런 목소리로 말이다.... "그이가 죽으면 저는 파출부 일을 하겠죠. 요양소에서 일하기 전에 저는 남부지방 이에르 쪽에 있는 아동 결핵 요양원에서 주방 일을 했어요. 아이들보다 더 착한 건, 신부님, 정말 없어요. 아이들은 하느님이죠."
p.411 (편지)
<역자 후기>
'M E D I A >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 그림들 (0) | 2022.08.17 |
---|---|
지혜롭게 나이든다는 것 (0) | 2022.08.10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변호, 아이들 (0) | 2022.06.04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이반 (0) | 2022.06.04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조시마 장로와 알료샤 (0) | 2022.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