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류시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둘레에
보이지 않는 원을 그려 가지고 있다
자신만 겨우 들어가는 새둥지 크기의 원을 그린 이도 있고
대양을 품을 만큼 혹등고래의 거대한 원을 그린 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 들어올 동심원을 그린 이도 있다
다른 원과 만나 어떤 원은 더 커지고
어떤 원은 더 작아진다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고
부딪쳐서 더 단단해지는 원이 있다
나이와 함께 산처럼 넓어지는 원이 있고
오월붓꽃 하나 들여놓을 데 없이 옹색해지는 원이 있다
어떤 원은 몽유병자의 혼잣말처럼 감정으로 가득하고
어떤 원은 달에 비친 이마처럼 환하다
영원히 궤도에 붙잡힌 혜성처럼 감옥인 원도 있고
별똥별처럼 자신을 태우며 해방에 이르는 원도 있다
원을 그리는 순간
그 원은 이미 작은 것
저마다 자기 둘레에
원 하나씩 그려 가지고 있다
생을 마치면 마침내 소멸되는 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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