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둔다
류시화
봄이 오니 언 연못 녹았다는 문장보다
언 연못 녹으니 봄이 왔다는 문장을
곁에 둔다
절망으로 데려가는 한나절의 희망보다
희망으로 데려가는 반나절의 절망을
곁에 둔다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파도를 마시는 사람을
걸어온 길을 신발이 말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곁에 둔다
응달에 숨어 겨울을 나는 눈보다
심장에 닿아 흔적 없이 녹는 눈을
곁에 둔다
웃는 근육이 퇴화된 돌보다
그 돌에 부딪쳐 노래하는 어린 강을
곁에 둔다
가정법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보다
가진 게 희망뿐이어서 어디서든 온몸 던지는 씨앗을
곁에 둔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곁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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