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책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린그린 2024. 2. 8. 15:11



P171. 내려오는 길은 어쩐지 더 짧게 느껴졌다.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나의 괴상한 애착과, 그가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내 인생을 되돌려놓을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에게는 내가 존경할 만한 많은 면들이 있었다. 그의 냉소."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꽃들에 대한 그의 몰두. 내 아버지의 쇠솔로 된 밀대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팔자수염. 그의 강철 같은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하지만 그 정도로 자기 확신을 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굳은살이 단단히 박히고 그 어떤 방해물에도 끄떡도 하지 않게 되면, 결국에는 한 여자의 목숨까지 끊어버릴 수 있게, 아니면 최소한 그 죽음의 진실을 기꺼이 은폐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P188.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심지어 완벽하게 자기 복제할 수 있는 벌레들과 식물들까지도 새로운 변이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유성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들은 정말로 이상하구나!" 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따금이라도 서로 다른 개체와 교배하는 것이 유리하거나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실은 아주 간단히 설명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당신의 유전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라"가 될 것이다. 상황이 바뀌면 그 상황에 어떤 특징이 더 유 용하게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다윈은 간섭하지 말라고 특별히 강력하게 경고한다. 그가 보기에 위험한 것은 인간의 눈에서 비롯된 오류 가능성,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적합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서는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특징들이 사실 종 전체나 생태계에는 이로울 수도 있고, 혹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린에게 경쟁자에 대한 우위를 갖춰준 것은 그 거추장스러운 목이었고, 바다표범이 심한 추위에도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움직이지 못할 만큼 무거워 보이는 체지방 덕분이었으며, 대다수가 생각도 할 수 없는 발명과 발견, 혁명을 이루게 한 열쇠는 확산적 사고를 하는 뇌일 것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외부 형질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자연은 외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P206.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 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 밥을 위한 것이다. 다인에게 기생충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이였고," 비범한 적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크건 작전, 깃털이 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 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왜 그걸 보지 못한 걸까? 사다리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반증하는 증거들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식물과 동물이 배열되는 방식에 관한 이 자의적인 믿음을 왜 그토록 보호하려 한 걸까? 그 믿음에 도전이 제기되면 왜 더욱 강하게 그 믿음을 고수하고 폭력적인 조치를 합리화하는 데 그 믿음을 사용했을까?
아마도 그 믿음이 그에게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페니키스 섬에서 젊은 그에게 처음으로 불꽃을 당긴 목적의식만도, 경력과 대의와 아내와 편안한 생활에 대한 보 장만도 아니었다. 훨씬 더 심오한 무엇, 그것은 바다와 별들과 현기증 나는 그의 인생을 휘몰아가는, 소용돌이치는 높을 깔끔하고 빛나는 질서로 바꾸는 방법이었다.
처음 다윈을 읽을 때부터 마지막으로 우생학을 밀어붙일 때 까지 어느 시점에서든 그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다시 현기증을 불러들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방금 자신의 형을 앗아간 세상 앞에서 상실감에 가득 차 떨고 있던 어린 소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었을 것이다. 세상 앞에서, 그 세상을 전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 도 없는, 겁에 질린 무력한 아이로. 그 계층구조를 놓아버리는 것은 삶의 회오리바람을 풀어놓는 일, 딱정벌레와 매와 박테리아와 상어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주변, 그의 위에서 빙빙 돌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거점. 중요성이라는 사랑스럽고 따스한 느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가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그토록 단단하게 붙잡고 늘어졌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까지 그가 그렇게 맹렬하게 그 비전 을 수호한 이유를. 바로 그 때문에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나 역시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갈망했다.

P208.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자서전을 덮었다. 2권이자 마지막 권인 올리브색의 책. 나는 그 책을 헤더의 시카고 아파트에서 내가 머물던 작은 손님방 침실 탁자에 올려두었다. 밤공기가 차분했다.
헤더는 시내 건너편에 있는 남자친구의 집에 갔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도시의 뜨거운 빛이 창을 뚫고 들어왔다.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분홍색 쓰 레기더미로 만들어버린 하늘 저 너머에서 분명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탈출하려고 그토록 애써온 지구로 다시 돌아왔 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사명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열심히 뉘우치든 어떤 피난처도 약속도 주지 않는 황량한 지구로.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망쳐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한다. 그 곱슬머리 남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를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주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고,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P222. 그날 거실에서 애나와 메리와 함께 앉아 있을 때 나는 애나에 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이기적인, 응석받이 같은 질문이었다.
애나가 수용소에 들어간 일, 학대당하고 강간당한 일, 정신지체자 취급을 당한 일, 진흙탕으로 밀쳐진 일, 턱이 부러진 일, 자신의 생식기를 절단당한 일에 관해 듣고 난 다음, 나는 애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평생에 걸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왔던 질문이다. 그것은 내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에 관해 조사하며 여러 해를 보낸 이유였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던졌던 바로 그 질문이며, 내가 그 곱슬머리 남자를, 차가운 지구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그의 매혹적인 방식을 그토록 놓지 않으려 버텨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경쾌함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가까이하고 싶었던 자질이며, 나의 내면에서도 만들어내고 싶었던 실체이며, 아무리 멀리 아무리 넓게 찾아보아도 나로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비법이었다.
애나도 답을 알지 못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애나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려고 화초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메리가 불쑥 말했다."나 때문이지!" 애나가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물론이지. 메리 때문이야." 그것은 농담이었고, 우리 모두를 실수로부터 구해주는 메리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수록, 그 말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나는 그들의 아파트를, 짝을 맞춘 안락의자와 짝을 맞춘 아이스티 잔을 다시 생각했다. 소파에 앉혀둔 인형, 우리 안에서 쳇바퀴를 돌리고 있던 햄스터, 거기 앉아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 기 시작했다. 두 여인 사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들이.

P226.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 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나와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할 수 있는 이 실질적인 방식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것. 이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 그게 아무 가치가 없다고?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넘어지지 않게 꼭 붙잡으시라)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 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 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 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 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 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 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계속 차를 몰면서 나는 이 넓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민들레 들이 마침내 이 사실을 이해한 나를 향해 동시에 동작을 맞춰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습을, 운전대 너머에서 내게 손짓을 하고 노란 꽃 송이를 흔들며 나를 응원해주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야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 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나는 운전대를 살짝 두드렸다. 운전대에 닿는 내 손가락이 한 층 더 가볍게 느껴졌고, 그 손가락이 조종하고 있는 인생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헤드라이트와 희망을 켠 차를 타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여전히 똑같은 텅 빈 지평선. 나는 우리의 지배자가 여전히 야멸차고 냉담하다고 생각했다. 저기 저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라고 확신했다. 약속은 없다. 피난처도 없다. 희미한 빛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든 상관없이.
하지만 그건 내가 아직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맞이한 진짜 결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P235. 휴, 한숨이 나온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 갈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주적 정의의 감각 같은 건 그 까칠하고 무의미한 조직 속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을 만큼 야멸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바닥 모를 혼란 한 세계는 소매 속에 또 하나의 속임수를 감춰두고 있었기 때문이 다. 데이비드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에게 가장 소중한 그것을 훔쳐 갈 마지막 하나 남은 방법을. 이 세계가 마침내 그의 물고기 컬렉 션을 단박에 허물어뜨린 그 은근하고 음흉한 방식을. 그것은 번개 도 아니고 홍수도 부패도 아니며, 큰 입을 벌려 그 모든 걸 집어삼 킨 거대한 싱크홀도 아니다. 아니, 자연의 방법은 훨씬 더 잔인했다. 자연은 그가 자기 손으로 직접 그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의 기술을 실행하고, 다윈의 충고대로 진화상의 천연성서에 따라 생물을 분류함으로써 작동 시킨 그 과정이 치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분류학 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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