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말)
제가 신부님 성함을 처음 알게 된 때는 94년도, 저희 서원에서 일하다가 [그리스도교 철학]을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처음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쉽고 명료하게 그리스도교 철학의 뿌리를 정리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 책을 쓰신 분을 꼭 한 번 만나뵙고 싶다는 바램을 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작년에(2000년) 그 바램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강의를 듣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대구에 온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웃으시겠지만, 신부님의 첫 강의시간을 저는 잊지 못한답니다. 제가 그렇게 고대했던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기쁨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 축복을 저는 2년동안 누려왔고, 이제는 신부님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을 통해 새롭게 다시 만난 철학은 저에게 "복음"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제 기대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접해야 했습니다. 88년이었으니까, 소위 운동권 학생들의 힘이 컸을 때이고 철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그런 활동에 앞장을 서거나 가담을 한 상태였습니다. '비운동권' 사람들은 대개 교회에 다니건,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었지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일컬어 모두들 '환자'라고 부르던 때였습니다. 저는 이미 니체에게 계몽(?)되어서 '대지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가짜 환자'였지만, 선배들이 처음 가르쳐준 포이에르바흐(Feuerbach)에게 마음을 두기에는, 인생이 너무 슬프고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유물론이 마스터키를 맡고 있는 분위기 안에서, 저는 그만 철학도, 신앙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을 따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이렇게 수도자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틀은 제 안에 그대로 남아서 제 마음을 항상 부대끼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침묵의 틀을 벗어놓고, 하느님을 향해 크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한과 무한의 겨룸터'(B. 벨테)로서의 제 존재를 직시하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이곳까지, 신부님께서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저의 스승이 되어주셨습니다. '더 먼 곳까지 데려다주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미 함께 와 주신 길도 결코 만만치 않기에, 이제는 지나온 길을 더 확실하게 굳히는 작업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 감사하는 마음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구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2001년 11월
2000-2001년, 대구에서 신학원을 다닐 때 鄭達龍신부님을 만나 철학을 다시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늘 마음에서, 꿈에서 스승으로 남아있는 분이다. 집무실에서 신부님을 만나뵙고 나면, 늘 당신의 논문이나 책을 주셨다. 그것들을 통해, 나는 가톨릭 철학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이 편지를 드리고 난 후, '철학적 신론' 마지막 강의시간에 내가 그 전 시간에 질문했던 벨테에 관한 글을 주셨다. '유한과 무한의 겨룸터'인 人間에게 희망이자 '친구'가 되어준 존재에 관한 짧은 글이었는데, 다음에 여기에 옮겨놓아야겠다. * 벨테(Bernard Welte. 독일)는 가톨릭 사제이며, Heidegger의 제자로서 그의 형이상학 틀에 철학적 신론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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