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골 나들이를 다녀온 한 수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머리에 꽃을 꽂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가씨가 올려다본 하늘에서
갑자기 어마어마한 쇳덩어리가 연기를 뿜으며 떨어진다.
인공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동막골 들판에 연합군의 전투기가 추락한 것이다.
때를 같이하여 북으로 철수하다가 길을 잃은 북한군 3명과
전장을 일탈한 국군 2명도 지친 몸을 이끌고 이 마을에 흘러 든다.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던 이 마을 한복판에 전쟁의 세 주역인 남한과 북한,
그리고 연합군이 만난 것이다. 과연 이들이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부리는 어떻게 될까?
아군 아니면 적군으로만 세상을 구별하던 군인들의 눈에
이 마을의 평화는 철없고 황당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인민군이 살벌한 대치전을 펼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대립상황은 점점 아이러니한 코미디로 전환된다.
이들 사이의 긴장은 곡식창고에 떨어진 폭탄이 옥수수를 터뜨리면서
무수히 튀어 오른 팝콘과 함께 가볍게 분산되어 날아가 버린다.
자신들의 엉뚱한 전쟁놀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겨울 양식을 한꺼번에 날린 군인들은
이제 곡식창고를 채워주기 위해 농사일을 거들어주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을의 농사를 망치던 멧돼지를 잡는 과정에서 연합군과 국군과 인민군은
한 편이 되어 유일한 적수인 멧돼지를 잡는데 성공한다.
전리품인 바비큐를 나누어 먹으면서 마음의 총부리마저 거두어들인 이들은
입고 있던 군복도 하나의 빨랫줄에 높이 매달고,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정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사실 전쟁으로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조심스레 남과 북의 상처를 다독거려주는 이 영화 안에서
나는 잠시나마 이념과 대립으로 왜곡된 인간성이 다시 건강해지고,
상처 받은 땅이 회복되어가는 행복을 맛본다.
어색하지만 그럴듯하게 조합된 영화제목이 암시하듯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라는 벽을 허물게 하는 이 영화에는
양극단의 요소들이 공존해 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어울려 있다.
총과 호미가 함께 있고, 군화와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있으며, 정상인과 미친 사람이 함께 있다.
그렇게 전혀 어울려서는 안 되는 줄로 알았던 것들이
드넓은 자연의 품 안에 평화롭게 안겨 있다.
“이 영화는 우리 민족의 소원을 풀어주는 것 같애. 정말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이미 지난 과거라 소용없는 이야기라 할지 모르지만,
이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좀더 편안하게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를 갖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상처 안에 깊이 파묻혀 신음하던
한 민족으로서의 순수한 동질감을 다시 느껴본다.
“그날이 오면,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 칼을 빼어드는 일이 없어 다시는 군사를 훈련하지 아니하리라.”(미가 4,3)
- [듣봄]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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