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E R S T O R Y/느끼는대로

비밀의 숲에서 내 뒤를 따라 걷다

기린그린 2010. 6. 28. 19:25

 

 

'낯선 곳에서 고향을 만나겠다'는 것이 이번 여정의 화두 비슷한 거였다.
하지만 그 지향 자체가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깨닫는데는 하루도 안 걸렸다.
그건 바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일종의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오만함을 깬 것이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인생이 어차피 하나의 여정이고
익숙한 것 안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고
낯선 것 안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하기 마련인데...
나는 너무 낯선 것을 동경한 나머지 가장 익숙한 세계를 간과했다.


결국 내가 이 여행에서 발견한 것은 나의 뒷모습인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이의 눈에 비친 뒷모습의 낯설음...
익숙한 이의 눈에서 나의 낯선 뒷모습이 파헤쳐지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명확하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당당한 앞모습이 드리우는 뒷모습...
그것은 때로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숨 막히게 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랬다...
머릿속으로 무슨 주장을 펴다가도
내 뒤를 다시 보면서 그 생각을 접고 또 접었다. 
사려니 숲길은 그렇게 나를 계속 접어들어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20킬로를 걸으면서도 나는 한결같이 내 뒷모습만 따라 걸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그 길은 참 무거운 길이었다.

 

이런 파장은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었나보다.
원래 떠나기로 한 전 날밤, 근래에 보기드문 커다란 번개와 천둥소리를 들으며
영화라면 이런 날씨 다음에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나에게도 그럴까?
했었는데.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가져갔던 책 <인생 수업>에서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물었는데
내가 배운 것은...
그 어떤 경치가 주는 감동도 어그러진 관계의 아픔보다 크지 않았고
나의 뒷모습을 보는 충격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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