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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안셀름 그륀)

기린그린 2011. 1. 3. 23:45

 

 

삼십대에 눈여겨보고 있다가 마흔 되면 읽어야지... 했는데, 이미 훌쩍 넘어버린 뒤에야

그것도 얼떨결에 집어서 보았는데, 얇은 것이 참 알찬 내용을 품고 있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이야기는 긴 글보다 짧은 글에서 더 명쾌하고 알아듣기 쉽다. (후기보다 초기가 더)

'중년의 위기, 은총으로 새로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내 나이 마흔]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중세철학자요 신비가인 요하네스 타울러((1300~1361.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의 견해를 요약한 것이고

두 번째는 융의 심리학에 기초한 중년의 위기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중년을 지내고 있는 나에게 두 분의 가르침 모두 좋았지만, 특히 타울러의 해석은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타울러는 그의 [강론집]에서 40세에 대해 자주 말한다.

40세는 인생의 전환점이다. 인간의 모든 영적 노력은 40세 이후에야 비로소 결실을 맺고,

그런 다음에야 인간은 영혼의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타울러는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40세와 50세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 영적인 위기에 봉착하는지 관찰했다.

그리고 중년의 위기라는 상황에 처했을 때, 실망한 채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일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타울러는 이 위기를 하느님 은총의 작품으로 본다.

하느님 자신이 인간을 위기로, 궁지로 몰아넣으신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진리로, 영혼의 심연에로 인도하고 싶으신 것이다.

타울러는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드락메, 즉 영혼의 심연을 발견하기 위해서

인간의 집을 뒤집어 난장판을 만드신다는 이미지를 사용한다.(루가 15,8-10. '잃었던 은전의 비유' 참조)

 

"인간이 이 집으로 와 거기서 하느님을 찾는다면 그 집은 뒤집어집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를 찾으십니다.

그분은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처럼 그 집을 헤쳐 뒤집으십니다.

그분은 찾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집안에 있는 것을 이리저리 내던지십니다."(172)

 

지금까지 자리잡고 있던 집의 질서를 뒤집는 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밑바탕을 보게 하고,

그래서 자신의 어떤 행위(노력)보다 영적 성장에 더 효과적인 자극제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기로 인도하실 때, 인간은 이 위기에 대해 자주 잘못 반응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무엇인가를 하신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작용하시도록 놔두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타울러는 위기에 대하여 잘못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 묘사한다. -

외부세계만을 탓하거나 형식적인 영적 훈련에로 도피하거나

바리사이들처럼 경건함과 외적 형식에 고착되어 절대로 자기 틀을 부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집에 찾아와 물건을 이리저리 집어던지시면서 집을 뒤집는다는 표현은 정말 끝내준다.

그것도 어딘가 내가 숨겨놓은 나의 영혼을 찾기 위해 그렇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겁에 질리겠는가?

그것도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찾기 위해 위협한다고 느낀다면...

하지만 하느님이 나의 영혼을 찾기 위해 내 집을 뒤집는 모습에는 엄청나게 큰 사랑이 느껴진다.

자기 틀에 갇혀 한껏 제잘난 멋에 취해 있으나 속으로는 병들어가고 있는 영혼을

하느님이 아니시면 누가 알아볼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중년의 나이를 지내면서, 중년의 사람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꼭 마흔이 아니더라도 어떤 불안과 위기에 봉착했을 때

하느님께서 나를 뒤집으실 수 있도록 더 빨리 내어드리는 것만이 좋은 수인 것 같다.

그래야 빨리 정리해주실테니까...

 

후반부, 융의 심리학에 기초한 중년의 위기 이해도 대단히 유익했다.

특히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오버액션을 어떻게 알아보고 또 대처해야할지...

간결하고 명쾌한 설명에 무겁게 졸던 눈이 확~ 떠졌다.  

 

따라서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힘들에 의해

외부세계를 위해 쌓아 올린 자신의 '외적 인격'(persona)을 무너지게 하는 사람,

자신의 모순성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사람,

자신의 기분과 의견을 늘 검토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개방하기에 충분히 겸손한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합하고

그럼으로써 정신적인 균형에 도달하는데 효과적인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