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 사람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해설했고 그것은 가부장의 말이었다.
감히 내 말을 부정하는 것이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어린 슬아는 선택해야 했다. 속을까 말까.
그는 빠르게 속기로 한다. 화선지에 바르게 '아들 자'와 '놈 자'와 '효도 효' 같은 글자를 쓴다. 효녀인 듯 유년기를 보낸다.
어쨌거나 할아버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P40. 그후로 팔 년이 흘렀다. 집안은 슬아 중심의 가녀장 체제로 제배치되었다. 오늘날 복회와 용이는 슬아 밑에서 일한다. 출판사 업무뿐 아니라 집안일도 부부의 몫이다. 웅이가 주로 청소와 빨래를 하고 복희가 부엌일을 책임진다. 복회의 월급은 웅이 월급의 두 배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야." 가녀장이 말했다. 이에 관해 웅이는 어떠한 불만도 없다.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희의 노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날마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장을 보고 냉장고를 경영하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시아버지랑 살 때도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회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잊을 만할 때쯤 한 번씩 그는 시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건다.
시아버지도 어느새 많이 늙었다. 그래도 매일 아침 운동하는 건 여전하다고 한다. 복희 주변에 그런 사람은 딱 둘뿐이다. 복희는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없는 기질을 딸이 가졌다고 느낀다. 딸에게는 주인의식이 있다. 손님처럼 살지 않는다.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감당하기 위해 자기 몸을 엄격히 관리한다. 그건 시아버지의 훌륭한 점이기도 했다. 좋은 점만을 빼닮은 게 복희로선 신기하다. 인간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훌륭해지는지도 모르겠다고 복희는 생각한다.
"아이폰도 갈수록 좋아지잖아." 가녀장이 말했고 복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에겐 좋은 것만을 반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반복하지 않을 힘도 있다.
아저씨의 아름다움
P.46 웅이의 또다른 업무는 가녀장을 차로 모시는 일이다. 슬아가 바깥일을 하러 나갈 때 그는 미리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린다. 차 안에서 슬아는 업무전화를 주고받는다. 통화가 끝나면 웅이는 하고 싶었던 얘기를 건넨다.
"저 타투할까봐요." 가녀장이 대답한다.
"하고 싶으면 하세요." 그는 아직 고민이다.
"무슨 모양을 새길지 모르겠어요." 슬아가 잠시 생각해본 뒤 말한다.
"세 보이려는 타투는 오히려 더 약해 보여요. 아름다운 아저씨 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아빠 같은 중년 남자일수록 겸손한 귀여움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에요." 며칠 뒤 용이는 슬아가 직접 그려준 도안을 들고 타투숍에 간다.
몇 시간 후 오른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새긴 웅이가 집에 돌아온다.
웅이가 즐거운 얼굴로 양팔을 내밀자 복희가 화들짝 놀란다.
"자기야! 너무......" 복희는 고민하며 할말을 고른다.
"너무••• 성실해 보인다!"
가녀장이 서재에서 내려온다. 웅이를 발견하고 한마디한다. "섹시하네."
복희가 묻는다. "섹시해?"
슬아가 대답한다. "이런 타투 새긴 젊은이 있으면 나는 바로 청혼했어." 웅이는 다시 청소를 하러 간다. 청소기와 대걸레가 새겨진 양팔을 흔들며 걷는다. 치울 거리는 날마다 생겨나기 마련이다. 웅이는 하루치 체력이 아침해와 함께 차오르는 것을 안다. 복권에 당첨되기 전까지 그의 노동도 계속될 것이다.
P.57 이때 강연자는 주인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떤 청중이 듣고 있느냐에 따라 강연이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슬아는 청중과 함께 흔들리는 강연을 선호한다. 질의응답 시간을 길게 갖는다는 뜻이다. 일방적인 이야기는 한 시간 내로 마치고 질의 응답에 삼십 분 이상 할애한다. 사람 많은 곳에서 손들고 질문 하는 것을 꺼리는 한국인의 특성상 대부분의 강연에서 질의응답은 썰렁하게 끝나기 일쑤지만 그의 강연은 그렇지 않다. 객석 사이로 마이크가 활발히 돌며 수많은 질문과 사연이 무대로 모인다. 모든 청중이 아만큼이나 유구한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며, 누구든 진정으로 듣는 상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슬아의 역할은 훌륭한 스피커보다 훌륭한 모더레이터에 가까워진다. 청중 대다수가 한 번씩 주인공이 되고 집에 돌아간다. 그들이 던진 질문에 슬아는 아는 만큼 성심성의껏 대답한다. 필요할 경우 청중에게 되묻고 지혜를 나누기도 한다.
P109.
복희가 책을 덮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났다. 이 자리에 모인 다섯 명은 그 세월을 같이 겪은 이들이었다.
"슬아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들인데." 윤희가 말했고 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 그 세월에 대해 가장 자세히 썼다는 게 신기했다. 존자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들려 준 글은 딸의 딸이 쓴 문장이었다. 존자 혼자서 푸념처럼 늘어놓던 과거가 삼대를 거쳐 슬아의 버전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존 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슬아의 기억과 복희, 영 희, 윤희, 병찬의 기억이 뒤섞인 편집본이었다. 존자는 이야기의 주인이 여럿임을 알게 되었다. 존자의 삶은 존자만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 렸다.
존자에 관한 여러 개의 진실이 시골집 거실에 차곡차곡 놓였 다. 마당에서는 배추들이 절여지는 중이었다.
P190. (아홉살 이화) 태어나서 좋은 점은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엄마 품에 안길 때, 학교에 갈 때, 글쓰기 수업을 할 때 나 는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그럴 때면 나를 태어나게 해준 엄마 와 아빠한테 고맙다. 태어나서 안 좋은 감정을 느낄 때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화낼 때, 친구와 싸울 때, 친구들 앞에 서 망신당할 때 그렇다. 그럼 마음속으로 '나는 왜 태어난 걸 까?' 생각한다. 어쩔 땐 태어나서 기쁘고 때때로 슬프기도 하 다. 태어났던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신기하고 당 황했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생각 할 수 있는 것도 태어나서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시 태어난 다면 나로 태어나고 싶다. 내가 언제나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내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P.233 •마술적 리얼리즘•••••• 그야말로 마술적이면서도 리얼한 작법을 말하는 거예요. 도대체 어째서 그게 가능한 건가 싶을 만큼 마법 같은 순간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서 당연하게 전개해요. 환상적인 일들도 되게 현실적인 일들처럼 묘사하고요."
"뭐래는 거야......"
"예를 들어 티타는 튀겨지는 도넛처럼 사랑에 빠지잖아. 그리고 슬픔에 잠긴 티타가 케이크를 만드는데, 하객들이 그 케이크를 먹고 죄다 슬픔에 전염되어버리잖아. 과장된 표현이 여기저기 남발되어 있는 거지."
슬아의 장황한 설명에 복희가 대꾸한다. "그거는 과장이 아니라 진짜야. 난 그게 뭔지 알아."
그러자 슬아는 입을 다문다. 복희와 달리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슬아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은 건 대학의 문학 수업에서였다. 남성 중심 문학에서 소외되어 있던 부엌과 음식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부각시킨 소설이라고 교수님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비단 남성 중심 문학의 문제인가. 슬아는 여성인데도 종종 복희의 부엌과 음식을 소외시키지 않았던가.
P294 미소 짓는 슬아의 가슴속에 하나의 문장이 조용히 떠오른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슬아에게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 중 하나다.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계속 쓸 수 있겠는가.
슬아는 자신에게도 신앙이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추앙과 문학에 관한 믿음으로 슬아는 움직여왔다. 신의 입을 빌려 기도하고 몸을 낮추듯, 슬아 역시 자기보다 먼저 살아간 작가들의 힘을 빌려 글을 쓴다.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얻고자 하는 건 전지적인 시점일 것이다.
P.307 할아버지는 그 한자가 여자애의 이름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계집다움이기도 하다고 어린 슬아에게 말했었다. 슬아는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그러나 이제는 너무 나이들어 버린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은 중요한 가치야.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그치만......"
아이가 슬아를 본다.
"무엇이 아름다운 건지는 우리가 직접 정할 수 있어.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명하게 될 거야."
P.308 늦은 오후. 책 배송을 마친 웅이가 집에 들어선다. 슬아는 아이들을 모두 보내놓고 마당에서 웅이와 맞담배를 피운다. 부엌을 치운 복희도 마당으로 내려온다.
"무화과가 다 익었네. 우리 대표님은 글쓰느라 마당에 무슨 열매가 열렸는지도 모르시겠죠?"
복희가 기쁜 마음으로 무화과를 딴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 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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