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7. 인간, 사이의 존재
선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늘은 무형 이고 땅은 유형이다. 하늘은 무형이라 광대무변하다. 땅은 유형이 라 두텁고 친근하다. 인간은 단어 자체가 이 '사이에서' 존재한다 는 뜻이다. 두 발로 서게 되면 시선은 하늘, 곧 무형의 세계를 바라 보되 두 다리는 땅에 안착해야 한다. 땅을 디딘 채 하늘을 응시하 는존재.이것이 인간이다.
땅은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이것이 생활의 원리다. 생활은 모 름지기 그래야 한다. 하늘은 무한하고 무상하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인식의 지평이다. 그것은 광 대무변하고 걸림이 없어야 한다. 땅의 두터움과 하늘의 가없음을 동시에 누릴 때 삶은 비로소 충만하다. 땅에만 들러붙어 있으면
'중력의 영'(니체)에 사로잡힐 것이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공 중부양되고 말 것이다. 일상은 튼실하되, 시선은 고귀하게! 현실은 명료하되, 비전은 거룩하게!- 이것이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 의 길이다.
P223. 자, 근데 지난주에는 무심하게 읽으라고 했죠. 사심을 버리고 어떤 기대나 통념, 전제를 버리고 읽으라는 뜻이었죠. 또 무심해야 집중이 잘 됩니다. 그 자체가 훈련이에요. 현대인은 자의식이 너무 비대해서 뭘 하든 자기식으로 합리화하려는 속성이 강합니다. 그 런 식이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자만심만 커지겠죠. 이걸 꼭 유의하 시기 바랍니다. 비울수록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지적 정보건 사유의 방식이건 저자의 생애에 대한 것이건 이전에 몰랐 던 것을 알게 될 때의 기쁨을 누리는 것,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는 것.
그렇게 발견한 것들을 가지고 오늘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여 기까지가 미션이죠. 그러면 이번 주엔 뭘 해야 되느냐, 이제부터는 사심을 듬뿍 갖고 읽어야 합니다. 이건 잘 하실 수 있죠? 늘 사심이 가득하시니까.(웃음) 지난주의 읽기가 그물을 넓게 친 거라면 지금 부터는 구체적인 목표와 경계를 갖고 그물을 다시 치는 겁니다. 이 제는 고기를 잡아서 요리를 해야 돼요. 요리하는 데 필요한 물고기 를 잡아야죠. 또 거기에 필요한 만큼을 건져 올려야죠. 그래서 남 으면 나눠주거나 다른 요리할 때 또 쓰면 되고.
근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뭐냐면 나의 전제를 깨는 거예요.
P251. 에세이-하라: 자기 삶의 철학자-되기
자. 세번째 강의를 시작할까요? 오늘의 주제는 '나는 무엇으로 존 재하는가? 입니다. 가장 일차적인 기준이 뭐겠어요? 행동이죠. 내 가 움직이는 동선을 체크해 보면 됩니다. 어렸을 땐 학교-집-학 교-집-학원, 이렇게 하다가 집-직장-편의점-카페-집, 그다음에 금요일은 주기적으로 클럽, 쇼핑몰, 모텔 등 이런 동선이 나오겠죠.
그럼 왜 이런 동선을 그릴까요? 그게 내 욕망이니까요. 욕망과 행 동, 그게 나의 존재론이에요. 자기를 알고 싶다, 그러면 이걸 먼저 체크하시면 됩니다. 또 자기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이걸 바꾸면 돼 요. 예를 들면, 클럽에 가다가 이젠 세미나를 한다, 이러면 일단 내 인생의 노선이 바뀐 거죠. 참 쉽죠. 근데, 왜 안 하지? 쉬운데 왜 안 할까요? 철학이 없기 때문이에요. 더 정확히는 철학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인식과 사유라는 정신활동을 하지 않으면 행동의 패 턴이 절대 안 바뀝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일차적으로 욕망의 지배를 받아요.
이때 욕망은 충동에 가깝습니다. 삶을 능동적으로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쾌락을 증식하는 쪽으로 나아가니까요. 무엇이든 내 것으로 소유하고 거기에서 오는 쾌락을 만끽하고 그게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이런 식의 패턴을 갖고 있죠. 그 패턴을 자기 자 신이라고 여기는 게 어리석음이에요. 무명(한자)이라고 하죠, 본성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태양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잖아요. 우리는 태양이 없으면 1초 도 못 살아요. 근데 우리는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죠. 한 방법도 없 구요. 옛사람들은 그런 무조건적 증여에 대해 깊이 사유를 했습니 다. 그게 태양신을 섬긴 이유죠. 동네 산신령을 섬기는 것도 산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걸 리얼하게 느꼈기 때문이죠. 이런 식으로 우 리는 공짜로 얻는 게 너무 많아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근데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낳는다'고 여기기 때문 에 자연과의 대칭적 연결고리가 끊어졌어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오로지 손해와 박탈감만을 느낄 뿐이죠. 그러니까 벌 어도 벌어도 불안하죠. 연결고리가 없잖아요. 그러면 나는 스펙이 나 재산하고 등가가 되어 버려요. 당연히 자존감이 떨어지죠. 공 허하기도 하구요. 나란 존재가 결국은 화폐로 환원되니까요. 그래 서 도박이나 성에 중독되거나 남들한테 갑질을 하는 겁니다. 스스 로를 존중할 수 없을 때 폭력에 휩싸이는 법이거든요. 결국 소유와 쾌락을 중심으로 욕망을 추구하는데, 그 과정은 늘 분노의 화염에 휩싸이게 되는 그런 싸이클이 나오는 거죠.
그럼 이런 사슬을 끊으려면 욕망과 행동의 패턴을 다시 그려 야겠죠. 고립과 단절이 아니라 대칭성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욕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소유와 증식을 향해 나아 갈 때, 쾌락의 무한질주를 하기 시작할 때가 문제인 거죠. 자본주읽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데는 도가 텄으니까 다 거기 에 걸려드는 거죠 (웃음) 일단 그런 구조를 철저하게 성찰을 하고, 그런 욕망의 궤도를 자아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 다. 소유와 쾌락은 생명의 본성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요. 거기에선 애착과 분노, 그리고 각종 질병밖엔 안 생깁니다. 창조가 아니라 파괴 혹은 퇴행이 일어나죠. 그래서 행동의 동선을 다시 그려야 합 니다. 욕망이 치달리는 걸 멈추게 하려면 일단 나의 동선을 그 반 대방향으로 틀어야 합니다. 그러면 욕망도 재구성되구요. 그러다 보면 욕망과 행동이 일치되는 때가 오겠죠.
결국 철학은 수행과 영적 훈련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 에 없어요. 그건 너무도 당연한 겁니다. 철학사를 정리하는 게 철 학이 아니라는 거죠. 그럼 철학이란 무엇이냐? 내 욕망의 심연을 탐구해서 행동의 리듬을 바꾸는 것, 욕망과 행동의 조화로운 일치 를 시도하는 것,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물론 이런 관점이나 방 향에서 철학사에 접근한다면 아주 드넓은 지평을 만날 수 있죠. 유학에선 존심양성, 그리스 로마 시대엔 자기 배려, 불교라면 '마음탐구‘등 정말로 다양한 영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공동체도 일종의 공통감각을 키우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공통감각이란 게 바로 욕망과 행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죠 공동체란 다 다른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의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기술 그러니까 그 사이를 조율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겠죠.
P295. 여행기의 비결: 유랑에서 유목으로.
연암의 사상은 문명과 자연, 그리고 일상의 디테일을 두루 관 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개는 이것들을 따로따로 구성하는데, 연암은 서로 다른 층위들을 한 번에 꿰뚫어 버려요. 그래서 유머와 역설이 가능한 거죠. 여행 중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이야기할 때도 그 안에 뭔가 심오한 사상이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늘 사유를 멈추 지 않고 있다는 말이죠.
[일야구도하기」가 그 증거예요. 「일야구도하기」 는 『열하일기』 안에서도 명문으로 꼽힙니다. 이 글이 산출되는 배 경을 살펴보면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때는 바야흐로 무박 나흘에 걸쳐 열하를 가는 중입니다. 무박나흘이라니, 이건 특전사 도 하지 않는 훈련이죠.(웃음) 그러니 굶주림에 잠고문으로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겠죠. 근데, 마지막 관문인 고북구 장성을 건넜어요.
바야흐로 야삼경, 깊은 감회 속에 장성을 넘었더니 강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근데, 무려 그 강이 아홉 구비인 거야. 그래서 아홉 번 을 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 거죠. 잠깐 방심하면 바로 익사야. 그 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연암의 사상이 빛을 발합니다. 연암은 이 순 간에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게 아니라 거꾸로 힘을 뺐어요. '한 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이 게 바로 도(3)예요. 살려고 몸부림치는 짓을 하지 않겠다, 그렇게 되면 물하고 적대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해 질 테죠. 모든 걸 운명에 맡기고 물과 하나가 되겠다, 고 하면서 마 음을 텅 비운 거죠. 그렇게 되니까 더 이상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 았어요. 무슨 뜻이에요? 귀가 먹은 건가요?(웃음) 깜깜한 밤에 강 을 건너면 보이는 건 없고 단지 소리만 들리겠죠? 그럴 땐 강물소 리가 정말 무시무시할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몸에 힘을 주게 될 테 고. 헌데, 마음이 평정을 찾게 되자 강물 소리가 더 이상 두려움으 로 다가오지 않게 된 거죠. 그래서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는데 아 무 근심 없이 의자에 앉았다 누웠다 하는 것 같았다, 는 겁니다. 와, 정말 멋지죠?
이런 멋짐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평소에 물을 관찰하고 소리 를 관찰하고 그때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예 요. 이게 바로 불경도 읽고 『장자』도 읽고 『논어」도 읽은 보람인 거 죠. 그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수없이 터득한 삶의 지혜를 진 짜 위기의 상황에서 응용을 해본 거죠. 이게 바로 사건과 함께 사 유가 탄생하는 현장입니다. '우리가 왜 인문학을 해야 돼?' 또는
'고전을 왜 읽어야 돼? 이런 질문만큼 어리석은 게 없어요. 사유하 지 않으면 삶을 지탱하기도, 지속하기도 어렵습니다. 고전의 지혜 야말로 일용할 양식이에요. 그 양식이 있을 때 길 위에 나설 수 있는 거구요. 길은 사건의 현장이죠. 늘 온갖 사건들이 생겨나고 소 멸합니다. 이 사건들 속에서 어떤 삶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키는 바로 사유의 내공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왜 『열하일기」를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했는지 이해되시죠?
'M E D I A >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송 장자 (2) | 2024.02.08 |
---|---|
노인과 바다 (1) | 2024.01.10 |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주역 심리학 (1) | 2023.12.20 |
가녀장의 시대 (1) | 2023.12.20 |
당신이 옳다 - 정혜신 (1) | 202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