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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기린그린 2024. 3. 25. 11:07

노마드랜드

P25.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승부가 조작된 게임에서 지느라 너무 많 은 시간을 써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스템을 뚫을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 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밴과 RV, 트레 일러로 이주해 들어가 좋은 날씨를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했 고, 계절성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연료 탱크를 채웠다. 린다는 그 부족의 일원이다. 린다가 서부 근처로 이주하는 동안 나는 그를 따라 다녔다.

P55. 나는 린다의 이야기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주의 깊게 들었다. 그 러면 사라지지 않는 몇몇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서였다. 어떻게 해서 열심히 일하는 예순네 살 여성이 결국 가진 집도, 영구적으로 머무를 장소도 없는 처지에 놓이고, 살아남기 위해 앞날 을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게 되는지를. 해발 2킬로미터에 이 르는 높다란 삼림지대에서, 오락가락하는 눈과 함께, 또 어쩌면 퓨마 들과도 함께, 소형 트레일러에 살면서, 변덕을 부려 근무시간을 삭감 하거나 심지어 그를 해고해버릴지도 모르는 고용주들의 뜻대로 화장 실을 문질러 닦으며 살게 되는지를. 그런 사람에게 미래란 어떤 그림일 까?

P227. 타이어 떠돌이들의 랑데부에 오셔서 수업을 듣고, 배우고, 멋진 친 구들도 많이 사귀세요." 밥 웰스의 웹사이트에 올라온 초대장에는 그 렇게 적혀 있었다. "현대의 밴 생활자들은 많은 면에서 옛 시대의 산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혼자 지내야 하고 계속 이동해야 하지 만, 그 못지않게 이따금씩 한데 모여 생각이 비슷한,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연결될 필요도 있습니다." 동료애를 갈망하는 린다에게 이 말은 근사하게 들렸다. 7개월 전 RV에 타고 출발할 때, 린다의 목표는 단지 재정적으로 살아남는 것 만이 아니었다. 린다는 더 커다란 공동체에, 성취와 자유를 찾아 자기 삶을 기꺼이 급진적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합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마존의 야간 교대 근무는 무던히도 고생스럽고 외로 웠다. 쉬는 날은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기운을 되찾는 날이었고, 다 른 노마드들과 이어질 시간은 별로 없었다. 매서운 겨울이 네바다를 장악해 기온이 섭씨 영하 18도까지 떨어지자, 데저트 로즈에 있던 린 다의 이웃들은 대부분 RV 주차장의 야외 공유지에서 어울리기보다 는 자신들의 차 안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났다.
린다는 오후가 되면 섭씨 21도까지 올라가는 쿼츠사이트의 따뜻한 날씨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P272. 내가 보는 대로의 진실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 순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형정제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현실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 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인류의 놀라운 능력을 증명해준다. 리베가 술 닛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지적하듯, 사람들은 위기의 시기에 기운을 내려고 노력한 뿐 아니라, "놀랍고도 강렬한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다. 견뎌내려는 우리의 의지를 뒤흔드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별이 빛나는 광활한 하늘 아래 동료 워캠퍼들과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있을 때와 같은 공유의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은 가
능하다.
다시 말해, 내가 몇 달째 인터뷰하고 있던 노마드들은 무력한 희생 자들도, 걱정 없는 모험가들도 아니었다. 진실은 훨씬 더 미묘했다. 하 지만 내가 어떻게 그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그즈음에, 나는 더 이상 당일치기 여행자가 아니었다. 나는 숱한 날들을 워캠퍼들 바로 곁에서 보내며 다섯 개 주에 걸쳐진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겨울 회합 동안 밤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서부터는 쿼츠사이트의 텐트 속 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내가 바라는 정도만큼 그 현 실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들의 삶을 파악할 만큼 가 까이 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 온전한 물입이, 날이면 날마다 그들 사이에서 몇 달을 보내는 일이, 몇몇 야영지에 단골이 되는 일이 필요했다.

P298. 몇 주가 지나 헤일런을 장기 주차장에 보관하기로 계약하고 나서 나는 뉴욕의 집으로 날아갔다. 브루클린의 내 아파트에 다시 들어가 는 기분은 이상했다. 밴처럼 작은 공간에 살다 보면, 폐소공포증은 결 국 자리를 내주고 비밀 아지트 같은 아늑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다. 벽들은 가까이 있고, 창문들은 가려져 있으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팔이 닿는 위치에 있다. 마치 자궁처럼. 아침에 일어날 때면, 설령 지난밤에 주차한 곳이 어디였는지 곧바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해도, 안 전하다는 감각이 전해져온다.
이 모든 것은 집에 돌아온 나를 예상보다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며 칠 동안 나는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은 상태로 침대에서 깨어났다. 일 반 크기의 매트리스가 너무 넓어 보였다. 벽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천 장도 너무 높았다. 그 모든 텅 빈 공간 때문에 나는 불안해졌고, 노출 된 기분이 들었다. 침실에 스며드는 햇빛이 너무 밝게 느껴졌다. 한번 은 잠에서 덜 깬 내가 내 방 창문을 밴 뒤쪽 창유리로 순간 착각한 적도 있었다.
집에서 보내는 첫 주가 지나자 혼란은 사라져갔다. 그러자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헤일런과 노마드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나는 다시 길 위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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