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0. 1돈키호테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신을 섬기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모험을 하려면 자신의 습관과 주위의 시선을 이 겨내야 합니다. 돈키호테를 보세요. 책을 읽기 위해 좋아하는 사냥을 끊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책을 샀지요. 그는 보
통 모험가가 아닙니다. 책에 미친 모험가예요. 이 정도로 결행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어정쩡해집니다. 우리는 그가 막무가내 모험가가 아닌 굉장히 지적인 모험가라는 걸 알아야 해요. 그에 게는 그를 지배하는 이론 같은 강력한 체계가 없었습니다. 돈키 호테는 책을 통해 체계를 넘어선 사람이에요. 미쳤기 때문에 다 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지요.
산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왕을 제거하지도 왕을 세우지 도 않습니다요. 다만 저는 저를 도울 뿐이지요. 제가 저의 주인이니까요.“
|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사람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존재하면 폐쇄되고 굳어버립니다. 다수가 공유 하는 관념에 갇히기 때문이지요. 그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덕'입니다. 이 덕은 궁금증이나 호기심으로 드러나며 개방적입 니다. 우리는 흔히 나로 존재하는 자를 폐쇄적인 이기주의자로 생각하고, 우리로 존재하면 개방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생각 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로 사는 사 람이 개방적이고, 우리 중 한 명으로 사는 사람이 폐쇄적이지요.
모험은 덕이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호기 심과 궁금증이 없는 사람은 모험할 수 없다는 뜻이 되지요. 나 로 존재하는 것이 괴팍한 돈키호테나 최진석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개방적이고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자유 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 야 하는 일이지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이 모험을 끝내 고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P25. 는 의미지요.
심장은 왜 쭈그러질까요? 내 눈으로 나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 다. 내가 나를 믿지 않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비교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내가 기준이 되어야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현실에서의 성취 도 커집니다. 외부의 것과 비교하거나 외부의 것을 추종하며 자 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주머니 속 체스 말에 불과합니다. 그건 곧 죽은 거예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볼 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 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쭈그러진 심장도 쫙 펼 수 있겠지요.
돈키호테의 미친 정신을 망가뜨린 사람이 누군가요? 카라스코 학사입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에요. 공부를 많이 했 다는 건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되는 것을 더 많이 했다는 의미 입니다. 바라는 것보다 바람직한 것을 더 많이 알고, 좋아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지요. 저는 세르반테스가 의도를 가지고 학사를 배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해진 윤 리, 정해진 논리, 정해진 가치 규범으로 돈키호테를 다시 고향 으로 끌고 들어왔어요. 돈키호테가 자기 자신일 때는 전부 미쳤다고 하더니 다수의 가치관을 따르자 다들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어떻게 됐나요? 죽었어요. 나로 살다가 우 리가 되는 순간 죽어버렸습니다. 나로 미쳐서는 생기발랄한 모 험을 멈추지 않았는데, 끌려와 다시 우리 안에 집어넣어진 순간 그는 죽었습니다. 돌아온 돈키호테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박수 를 쳤습니다.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박수를 친 게 아니에요. 제 가 이 책을 읽고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우리 모두 돈키호테처 럼 죽지 않도록 "쭈그러진 심장을 쫙 폅시다".
어린 왕자
P44. 살던 곳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떠날 수 있어 야 해요. 떠나지 않고, 건너지 않고는 어떠한 완성도 있을 수 없 습니다. 인간으로 완성되고 싶다면 일단 떠나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뽑으신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1"내 별을 봐,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어." 저는 이렇게 패러디 하고 싶습니다. 내 우물을 봐, 바로 내 안에 있어." 그리고 다 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렇게 멀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 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페스트
P67. 1 페스트는 병입니다. 전염병. 하지만 우리는 제사를 풍해 카위 가 페스트로 쥐벼룩이 옮기는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관해 말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가장 대표적 인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뮈가 제2차 세계대전을 지 나며 겪은 고통과 고뇌가 없었다면 「페스트」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페스트로 비유된 이 전쟁은 결별, 감옥, 엉뚱한 부조리 에 갇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 예상하지 못한 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곤혹, 이 런 것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요. 이것들이 바로 페스트입 니다. 소설 속에 "인생 자체가 페스트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에 빗대면 페스트는 특정 관념에 지배당하는 것, 정해 진 마음에 갇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게 다른 세계와 만나 지 못하는 결별이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학대지요. 제 게 "페스트가 무엇이냐? 물어보신다면 카뮈가 말했듯이 "인생 자체다", 더 구체적으로는 "너의 정해진 마음이요, 묶인 발이 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정해진 마음, 미래에 대한 곤혹, 고통, 번민, 나를 잡아먹고 세계와 결별시키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어 떻게 더 나은 단계로 건너갈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입니다.
1카뮈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갇히지 않고 자기의 행복, 사랑,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페스트 같 은 것들이 닥쳐와 행복과 자유를 잃더라도 의지를 갖고 긴장을 풀지 않으면 투쟁을 통해 결국 다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이것 이 카뮈가 「페스트」에서 전하려던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이 「페스트」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카 뭐는 신을 '관념의 총아'로 보았지요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 옵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이다." 관념에 휩싸이면 세계가 명료 해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우파, 좌파 이런 것들요. 반면, 관념을 버리면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려고 애써야만 하지요.
파늘루 신부와 리유, 랑베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파늘루 신부는 결론이 명료하지만 리유와 랑베르는 수없이 많은 토론을 합니다. 언뜻 지지부진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어둠 속에서 도 뚜렷하게 보기 위한 숭고한 상호작용입니다. 파늘루 신부는 리유나 랑베르와 같이 승리를 체험한 이들과 대화하며 무엇인 가를 깨닫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는 십자가를 꼭 쥐었지만 애 매한 표정과 눈빛으로 죽어갑니다. 파루 신부도 인간적인 승 리를 조금이나마 맛본 것이지요. 종교적 모호함, 종교적 머뭇거 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진짜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
•다. 리유나 베르 같은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습니다. 이미 창 조된 세계를 거부하고 투쟁합으로써 진리의 길을 성실하게 걸 어갑니다. 하편 미셀은 어떤가요? 그는 투쟁을 시작도 하지 않 있습니다. 어둠 속을 걸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일 먼 저 죽었습니다.
P86. 관념은 없고 존재는 있다. 봄은 없고 새싹이 돋아나는 사건만 있다. 일반명사인 봄은 관념이며 새싹이 돋는 사건은 존재다. 게 으른 자는 봄을 말하고 긴장하는 자는 돋아나는 새싹을 살핀다.
게으른 자는 봄을 논하느라 새싹을 외면한다. 살피지 않고 외면 하는 사이에 빚어지는 엇박자가 길어지면 인생은 발이 묶인 야 생마처럼 속절없다. 리유는 페스트에 걸려 고통 속에서 죽어가 는 아이의 곁을 지키다 "아이들마저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라며 파늘루 신부 앞에서 절규한다. 이는 페스트에 발이 묶인 한 인간이 감옥 문을 열고 자유를 되찾겠다는 투쟁적 선언이다.
보건대를 조직해 페스트와 투쟁하던 타루의 관심사는 "어떻 게 하면 성인이 되는가?"였다. 이에 대해 리유는 말한다. "내 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관 넘이고 인간이 되겠다는 나는 존재다. 카뮈는 보건대까지 조직 해 선을 행하던 타루를 죽이고 리유를 살렸다. 타루처럼 나를 혁 명하는 데에는 관심 없이 우리를 혁명하는 데에만 열을 내느라 스스로 갇히는 자들도 있다. 우리는 관념이고 나는 존재다. 정해 진 사랑을 실천하느라 자신의 사랑을 잃고 발이 묶인 자들도 있 다.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 서 뭣하겠는가." 관념의 우두머리인 신의 대리인으로 지내는 것 은 죽음의 길이고, 구체적 존재인 자신의 주인이 되어 인간으로 서 자격을 갖춰나가는 것은 삶의 길이다.
관념에 갇히면 보지 않고 판단한다. 보는 것은 세상이 내게 밀 려들어오도록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활짝 여는 일이다. 자신을 곧게 세우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지지대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판단하는 것은 지지대에 기대어 그 너머의 세상 을 단정하는 일이다. 카뮈에게 가장 강력한 지지대는 신이었다.
타루가 묻는다.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리유가 말한다. "믿 지 않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리유는 이렇게 설 명한다."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 입니다." 지지대가 되어줄 관념을 버린 인간은 숙명처럼 어둠의 혼란 속에서 무언가를 뚜렷이 보려고 애쓸 뿐이다. 죽어 있는 관 념을 말하는 대신 "임종하는 자의 숨소리"를 뚜렷이 들으려고 애 쓴다. 이것이 페스트와 싸우려는 의지를 가진, 긴장하는 인간의 모습이요 인간적인 투쟁이다.
1 「데미안 에도 나오지만, 죽기 전까지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숭고한 사명은 나를 대면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아야 하 고, 내가 원하는 내가 되어야 하지요. 내가 원하는 내가 된 사람 이 이 창의적이고 선도적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성 취도 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고요.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된 자는 질문하는 자이고,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 자 는 대답하는 자입니다. 이 세계는 질문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질문의 결과이지요. 대답의 결과 로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향해 나아가는 길, 그 길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이 책을 골랐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알기 쉬운데, 내 행복은 알기 어 려워요. 그래서 자기를 찾는 게 생산성도 높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감히 자기를 바치지는 않지요. 치열하게 생각하 고 세심하게 살펴야만 알 수 있으니까요. 어떤 문제든지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굉장히 큰 차이가 만들어집니다. 『데 미안, 속 이 구절은 외우면 좋겠습니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 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 록 어려웠을까.”
해야 하는 것을 하기가 더 쉬울까요, 하고 싶은 것 하기가 더 쉬 울까요? 해야 하는 것 하기가 더 쉽습니다. 정해져 있는 것은 숙 고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자기가 바라는 것은 자기 안에 서 솟아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은 굉장 히 어렵습니다. 그것을 헤세는 두려움이라고 표현했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동반하고, 나는 그것에 힘입어 두려워도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내 안의 행복은 현재 상태를 넘어 다음 단계로 가야지만 실현될 수 있지요. 그런데 대부분 이 다음 단계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 미안』에 나오는 표현에 의하면 "어둠의 세계"지요. 그래서 두려 운 겁니다. 해야 하는 것은 꽂혀 있는 깃발이라서 잡으면 되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항상 어디론가 넘어가려는 충동과 함께합니 다. 하지만 넘어가려는 그곳은 해석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고, 음산하고 이상해요.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항상 불안 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것은 나중 에 이야기하고, 해야 하는 것부터 이야기하는 까닭도 그렇습니 다. 해야 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게 안전하니까요.
P113. 싱클레어를 보세요. 거짓말하는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 말은 자기 안에서 자기만의 문제가 드러 났다는 것입니다. 베아트리체와 사랑에 빠지고 또 다시 한계에 이르지요. 결국 베아트리체도 떠납니다.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서도 한계에 부딪히지만, 싱클레어는 결국 이 한계를 돌파합니 다. 재미있는 인물은 크나우어인데, 크나우어가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습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한 행동을 이제 는 싱클레어가 크나우어에게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데미안 만큼 싱클레어가 성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후 싱 클레어는 여행을 떠나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납니 다. 그녀는 데미안을 묘사할 때,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여 자의 모습도 보이고 열정적인 것 같은데 고요한 것도 같다며 대 립적인 상태를 표현합니다. 에바 부인도 남성과 여성의 양면을 모두 지닌 모습이에요. 이 소설에서 데미안과 에바 부인으로 상 징되는 인간의 궁극적인 단계는 대립면의 공존'입니다. 대립면 이 공존할 때 사람들이 드러내는 가장 큰 특징은 고독이지요.
고독은 외로움과 달라요. 외로움은 다른 무엇이 없어서 생기는 약한 마음이지만, 고독은 자기 안에 머무는 것, 자기만 존재하 는 것, 굉장히 당당하고 심지어는 오만하기까지 한, 매우 강한 마음입니다. 자기에게 향한다는 말은 고독하다는 뜻이고요. 고 독한 사람은 질문을 합니다. 반면 대답하는 자는 휘둘리는 자입 니다. 또한 바라는 것을 하는 자는 고독한 자이고, 바람직한 것 을 하는 자는 휘둘리는 자입니다.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와 사 랑에 빠지고 무슨 말을 했나요? "이제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 다." 우리는 보통 혼자 있기 어려워서 사랑을 하잖아요. 하지만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사랑해서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어 요. 그 이전에는 어땠나요? 데미안이나 다른 어떤 존재를 필요 로 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되어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독서나 산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것은 고도의 지적 작업입니다. 독서를 통하면 내가 다른 데로 건너가고, 산책을 해도 내가 다른 데로 건너가지요.
함석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만의 동굴을 가졌는가." 자기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고독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고독한 사 람은 자기를 인정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이에요. 싱클레어 가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돌파하고 부딪히고 돌파하는 이 과정 은 한쪽으로 치우친 세계에 균열을 내고 이면의 다른 세계와 통 합하려는 과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독한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고독한 존재로 성장하면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일 치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데미안이 에바 대신 싱 클레어에게 키스를 합니다. 싱클레어는 절대 고독을 이루어내 고요. 그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자 기가 자기 원인이고, 자기 목적이지요. 즉, 내가 내가 되는 것입 니다. 이 같은 경지를 신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데미안』의 결론 은 무엇일까요? "내가 완전한 고독으로 나에게 도달했다. 이제 는 내가 나의 원인이고, 내가 나의 목적이다." 여기에 쓰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숨겨진 한 줄이 더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다. 내가 신이다.' 우리 인생은 정말 짧습니다. 짧은 인생에서 어떻게 무한을 생산하고 경험할 것인가는 인간이 물어야 하는 굉장히 큰 질문, 그럼에도 한번 덤벼볼 만한 질문입니다.
노인과 바다
P131. 헤밍웨이의 소설이 대체로 그렇지만, 『노인과 바다』만 놓고 봐 도 그의 문체는 굉장히 무미건조합니다. 이런 스타일을 '하드보 일드hard-boiled'라고 하지요. 하드보일드라는 건 계란을 푹 삶은 거예요. 반숙하면 계란이 촉촉하고 부드럽지만 아주 푹 삶아버 리면 퍽퍽하잖아요. 푹 삶은 계란처럼 무미건조하게 문장을 쓰 는 것이지요. 빙산의 삼사십 퍼센트만 수면 위로 드러내고 육칠 십 퍼센트의 밑바닥은 오히려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원고를 여든일곱 번 정도 교정했 다고 하는데요. 교정을 하는 동안 그가 자신의 문장을 무미건 조하게 만드는 데 시간을 다 쓰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 소 설에는 형용사가 적고 사건에 대한 묘사나 감정 묘사가 많지 않 아요. 인물들의 행동과 대화, 혼잣말을 짤막하게 기술하거나 묘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소설에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헤밍웨이가 의도적으로 감동을 주겠다고 작정하지 않 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감동의 여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설명된 글보다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은 글 속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감 동이 훨씬 크지 않을까요?
P.173 동물농장
저는 『동물농장』에서 제일 훌륭한 동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몰 리를 선택할 겁니다. 몰리는 죽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 는 존재지요.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다가 결국 울타리를 넘어간 존재입니다. 혁명가들은 나중에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누가 특권층이 되었지요? 돼지들입니다. 특권층이 된 돼지의 새끼들은 다른 동물의 새끼들과 놀지 말라는 지시를 받 아요. 이 무렵에 정해진 또 다른 규칙이, 길에서 돼지를 만나면 반드시 옆으로 공손히 비켜서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또 모든 돼 지는 등급에 상관없이 일요일에는 꼬리에 녹색 댕기를 매달 특 권도 가졌습니다. 결국 돼지들만 필요 이상을 추구하는 본성을 만족시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몰리만은 댕기를 매달 수 없다 는 한계에 갇히지 않고 결국에는 울타리를 넘어가는 데 성공합니다.
가장 답답한 동물은 복서인가요?
1 그렇죠. 그런데 저는 복서보다 돼지들의 잔혹함을 더 주의 지 기 봤습니다. 복서가 엄청 이용답하잖아요. 이용동하는지도 모 크고, 이용당하고 있다는 다른 동물의 말을 묻으려 하지도 않지 요. 이용당하는 것을 충성심으로 생각합니다. 토론은 더 이상 없으며 충성과 복종이 중요하다는 돼지들의 말에 넘어간 것입 니다. 그리고 복서는 "나폴레옹 동무가 옳다고 하면 옳은 거야기 라고 반응합니다. 복서는 나중에 은퇴해서 E부터 Z까지 알파벳
을 떼는 게 여생의 목표입니다. 복서는 자기가 이용당하고 지배 당하는 것을 몰라요. 자기가 전체주의 사회의 노예라는 것도 모 르지요. 그래서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다른 동물보다
30분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렇게 돼지들의 독재에 이용당하고 희생하다가 결국 폐마업자에게 팔 려갑니다. 말 도살업자가 준 돈으로 돼지들은 술을 마시고 파 티를 해요. 이것이 전체주의적 독재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그것을 모르지요. 왜 모르나요? 생각하는 능력이 없 어서 무지하니까요. 자유로운 삶을 원하세요? 그렇다면 생각하 는 능력을 키우세요.
P.221 걸리버 여행기
우리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고유한 사람이고 유일 한 사람이지요. 고유하고 유일하다는 점에서 우린 이미 특별해 요. 왜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나요? 다른 사람이 평범하 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만큼은 특별해야 해요. 사람들이 자기를 너무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다는 분들을 많이 봐요. 자기가 자 기에게 먼저 특별한 사람이란 것을 인정해야 해요. 자기는 절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존재, 고유한 존재예요. 이 세계와 우주에 유일하니까요. 그러니까 누구도, 어떤 것도 자기 를 침범하게 두면 안 됩니다. 자기를 약화시키게 해도 안 돼요.
무엇을 하든지 스스로가 유일한 친구가 되어야 하지요.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대해도 스스로만큼은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뤄주세요.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P.287 아큐정전
1 세상을 혁명하고 싶으면 스스로를 먼저 혁명해야 해요. 자기 는 혁명되지 않은 채 세상을 혁명하려고 하니까 일이 안 되는
거지요.
이제 교수님이 뽑으신 한 문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1'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신도 몰랐다." 앞 문강까지 보면 이렇습니다. "그는 길을 가면서 구걸하기로 했다. 낯익은 술집 이 눈에 들어오고 낯익은 만두가 눈에 들어왔지만 다 지나쳤다.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고 구걸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신도 몰랐다." 아오는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조선 말기 주자학에 빠진 사람들도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고 죽어 라고 학문만 외웠어요. 아Q도 낡고 유효성이 지난 사당에 살면 서 그 이데올로기를 지킬 줄만 알았지 정작 자기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몰랐던 것이지요.
아오는 왜 정신 승리법에 빠졌을까요? 왜 쉽게 망각했을까요?
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가졌을까요? 바라는 것이 없기 때 문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기준을 가지고 미리 판단하기보다 먼저 행 동하고 입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직접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이미 있는 기준을 가지고 맹목적으 로 판단하지요. 아O가 그랬잖아요. 비구니가 중과 어쩐다느니, 성 안 사람들이 긴 의자를 가는 의자라고 부르는 건 틀렸다느 나, 아는 자기의 기준을 가장 중요시해요. 거기에 맞지 않으면 사소한 것도 아주 큰 문제처럼 달려들어 잘잘못을 따지고 들지 요. 아O는 맹목적 판단으로 가득 찬 인물이고, 맹목적으로 판단만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Q의 가장 큰 문제는 무지입니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자기 생각 없이 판단만 하고, 자기를 향해 걸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일의 대소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뭐가 진짜 중요한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큰일이 벌어지는 중에도 작은 일에 빠져 있고는 합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는데 대개는 급한 일을 먼저 해요. 물론 급한 불부터 꺼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 정 작 중요한 일은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오는 다시 감옥에 들어왔지만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그는 살다 보면 감옥에 잡혀 들어올 때도 있고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때도 있으나, 다만 동그라미를 동그랗게 그리지 못해 그의 이력에 오점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사형장에 끌려갈 준비 를 하고 있는 아Q가 감옥에서 하는 걱정이 '나는 왜 동그라미 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을까?'예요. 그건 자기가 지금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이 직면한 가장 큰일 중의 하나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 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존재론적으로 가장 큰 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큰 판을 인식하지 않아요. 인생 은 짧고 우리는 곧 죽어요. 이것을 철저히 인식하면 더 중요한 일부터 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옆집에서 우리 집 대문 앞에 쓰레기봉투를 버린 일, 운전하던 중에 차가 끼어 든 일이 우주적으로 큰일처럼 보이지요. 스스로 진실하고 철저 하게 생각하고 발견한 소명이 있다면, 작은 일을 작은 일로 보 고 큰일을 큰일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소명이 없다 면 큰일을 보지 못하고 작은 일을 보지요.
1자기를 궁금해하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진실하고 철저하게 생각하며 자기를 향해 가는 사람에게는 반 드시 그 향기를 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향기를 내뿜는 어떤 절차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를 봐줄 것을 기대하지만 누구도 전혀 봐주지 않지요. 우 어멈이 아Q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자기에게 진실하고, 자기 소명을 발견하고,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분명한 채 자기를 향해 걷는 것이 인간 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이것을 간과하면 아0처럼 누 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0처럼 살면 아Q가 됩니다. 아Q들이 사는 세상은 청나라 말 기 같은 세상이지요. 운명을 자기 힘으로 결정할 수 없고, 어떻 게 망하는지도 모르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각 성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징비록
P.323 책을 보면 이순신이 오랜 시간 함양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조심 스러워서 마치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내면에 담력을 가지고 있어 자기 자신을 잊고 나라를 위해 죽었 으니 이는 바로 평소에 그가 자신을 함양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자기가 함양한 정도 이상을 살기 어렵습니다. 이순신처 럼 되고 싶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내면을 함양해야 합 니다. 이순신처럼 지식을 쌓고, 인격을 길러야 하지요. 스스로 함양하지 않으면 이순신 같은 인격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돈키호테」부터 『이솝 우화』까지 자기를 함양하는 것에 관해 읽었어요. 그다음에는 「아Q정전」을 통해 자기를 함양하지 않으면 엉망진창으로 망가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징 비록」에서 아Q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하고 재난을 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의 여덟 편과 『아Q정전 「징비록」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바로 '자기를 함양하라'입니다.
어떤 분들은 굳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하냐고 물으시지만, 생 각하지 않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자기로도 살아 보고 자기가 아니게도 살아보고, 자유롭게도 살아보고 종속적 으로도 살아볼 정도로 인생이 길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내가 나로 사는 이 일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과 독립적 이고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알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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