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영화관

거북이도 난다

기린그린 2010. 5. 22. 22:24

 




전혀 다른 세상을 보기를 기대하며 깜깜한 동굴 같은 극장에서 
스크린이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창을 연다. 
이번에 목격한 현장은 이라크 국경지대의 쿠르드족 아이들. 
이 영화는 아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부터 침공을 마친 후까지, 
전쟁의 언저리에서 지뢰밭을 배회하는 이 민족의 아이들을 담아내고 있다. 
쿠르드족은 이라크와 터키 사이에 하나의 민족으로만 존재할 뿐, 
국가는 경계선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에 처해 왔다. 
같은 민족 출신인 감독은 쿠르드는 쿠르드일뿐, 
이라크도 터키도 아니라고 못박는다.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것조차 미안하기 그지없는 
평화 없는 세상의 아이들...




 

전쟁의 와중에도 아이들을 끌어 모으고 대장노릇을 하며 
어른들과 척척 거래를 하며 돈을 버는 소년 
위성
위성은 위성TV가 아니면 세상 소식을 알 수 없는 동족들에게 돌아다니며 
위성안테나를 달아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위성'과 그의 아이들은 사방에 널린 지뢰밭에서 
지뢰를 캐내어 다시 되파는 것이 일이다



어느날 
위성의 눈 앞에 나타난 낯설지만 아름답고
한없이 깊은 슬픔을 움켜쥔 소녀 아그린
 
그 소녀는 지뢰로 양팔을 잃은 오빠 헹고와 리가라는 아기와 함께 온 난민이다. 
아기는 수년 전 겪은 전쟁에서 이 남매의 부모를 죽인 군인들이 
소녀에게 남기고 간 끔찍한 비극의 열매이다. 
장님으로 태어난 리가의 눈처럼, 끝없이 고통스런 과거만 재생 기억되는 
아그린에게도 미래는 암흑일 뿐이다. 
결국 자신과 아이를 돌봐주는 오빠와 
위성의 지극한 사랑도 이길 수 없었던 
암담함은 소녀를 끝내 벼랑 끝으로 몰고 가서 내던져 버린다.  
"거북이가 날았다..."



감독은 소녀가 업고 다녀야 했던 아이를 
무겁고 딱딱한 거북이의 등껍질에 비유했다고 한다.

고통과 원한의 씨앗이자 자기가 낳은 아이를 물 속에 빠뜨리고
스스로 벼랑 밑의 바람으로 날아간 거북이
  
하지만 그것은 비상이 아닌 추락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전쟁의 와중에도 ‘위성’이 실제 전쟁을 치른 것은 불과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지뢰밭에서 노는 리가를 구하려다가 밟아버린 지뢰로 다친 발과, 
또 그렇게 살려낸 아기가 물 속의 주검 변해버린 것과, 
한 송이 꽃처럼 마음을 밝혀주던 아그린이 남긴 
신발만이 덩그러니 자기 손에 주어지기 전까지… 
‘위성’에게 있어 전쟁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명예를 높이며 
세력을 키우는 하나의 무대였던 것이다. 

몇 마디 영어단어로 동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대접을 받으며, 
‘아메리카, 아메리카’를 외쳐대던 ‘위성’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미군의 행진을 외면하고, 
그들과 반대의 길을 걷는 엔딩장면은 
의미 없는 죽음을 부추기는 전쟁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전쟁과 죽음 등…미래를 예언하는 헹고의 초능력은 
어쩌면 평화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일상적인 정서일런지도 모른다. 




원제 : Turtles Can Fly, Lakposhtha Ham Parvaz Mikonand, 2004
감독 : 바흐만 고바디.
주연 : 소란 에브라힘. 아바즈 라티프.

* 제55회(2005) 베를린국제영화제 평화영화상 
* 제52회(2004)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황금조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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