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쓰다가 만 한라산 일기를 다시 이어본다.
길게 잡으면 9일이나 되는 추석연휴에...
우리는 닷새를 수도회 전체 모임에 할애한다.
괜히 우울해지는 마음에... 기억에 남아있는 산에나 다시 올라가 본다.
윗새오름에 도착한 것이 한 3시쯤...
완전히 시간개념이 없었던 나는 이 시간이 되어서도 늦은 줄 몰랐다.
그냥 따사로운 햇살과 맑게 펼쳐진 하늘...
그리고 정말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는 행복에 젖어
혼자서 연신 히죽거리며 제멋에 겨운 걸음을 놀렸다.
정말 꿈만 같았다.
여기가 산 위란 말이지..??
외국에나 있는줄 알았던 넓은 들판, 자연 그대로의 땅...
돌멩이 하나도 나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존재하던
눈부신 때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를 만난 것처럼...
하늘과 들과 돌들과 내가 하나의 기쁨 안에 있다.
영실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내 걸음은 점점 더 늦어졌다.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은 걸음을 하나씩 옮길 때마다
다른 모양새를 뽐냈고, 나는 그저 감탄하는 마음으로만 바라볼 뿐이었다.
태양은 벌써 일몰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그냥 바라보고 좋아했을 뿐,
제주로 가는 버스가 일찍 끊어지는 줄도 몰랐고,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이렇게 화려한 날의 흥을 사소한 걱정으로 망치기 싫었던게지...
원시의 숲은 지난 것 같기도 하고....
거친 자연의 숨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산 전체가 오래된 담요를 두른 것처럼...
그 모든게 따뜻하고 포근했다.
뒤에 남겨진 길마저 어찌나 두고 오기가 아깝던지...
한참을 이렇게 높고 먼 곳에 있었다.
이렇게 고요한 장관 앞에서
정말 함께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까?
그렇기도 할테고, 혼자인 것도 충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늘 헷갈리는 문제다. ^^
하느님은 이날 구름으로 마음껏 그림을 펼쳐보이셨다.
정말 안 가면 안 될까???
결국은 아주 착하고 좋은 분들을 만나서
겨우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보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무대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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