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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린그린 2013. 9. 29. 10:5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그들은 캠프 활동 사이사이 짬을 내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이나 사람됨을 이해하게 되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가슴에 품은 문제들을 고백했다. 그리고 여름 캠프가 끝났을 때 다섯 명은 제각기 '나는 지금 올바른 장소에서 친구를 만났다.'라고 느꼈다. 자신이 네 명을 필요로 하고 네 명 또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조화로운 어울림의 감각이었다. 그것은 우연한 행운이 불러온 화학적 융합 같은 것이었다. 같은 재료를 갖추고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해도 같은 결과가 결코 두 번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p.12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그때 나에게는 이렇든 저렇든 아무 상관 없었으니까. 코앞에서 문이 탁, 닥혀버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거야. 그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렇지만 만일 그게 모두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지." p.47

질투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은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인 것이다. 61

그리고 남은 것은 체념을 닮은 조용한 사색뿐이었다. 그것은 색채가 없는 잔잔한 바다처럼 중립적인 감정이었다. 그는 텅 빈 오래되고 큰 집에 혼자 동그마니 앉아 오래되고 거대한 괘종시계가 시간을 새기는 울적한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입을 다물고 눈길 한번 떼지 않고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라고 얇은 막 같은 것으로 감정을 몇 겹이나 감싸고 마음을 텅 비워 낸 채 한 시간마다 착실히 늙어갔다. 62

그렇다고 해도 그 연하의 친구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대체로 네 명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잊는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자신이 네 친구에게서 노골적으로 거부당한 아픔은 그의 마음속에 늘 변함없이 존재했다. 다만 그 무렵에 와서는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어느 순간 발바닥까지 밀려오고, 어느 순간에는 멀리 가 버린다. 잘 보이지 않을만큼 멀리. 87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364

*** 앞부분, 느닷없이 친구들에게 버림받았을 때의 느낌과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각했던 부분의 묘사가 좋았다. 내 마음에서도 수없이 일어났다 물러서는 감정의 파도가 언어로 드러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 뒷부분이 흐지부지 끝나버린 느낌이라 처음 건 기대에 못미쳤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마주보고 슬픔을 돌볼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