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E D I A 395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저의 기본적인 태도도 타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깊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다가 사랑하는 순간부터는 이해 불가라고나 할까요. 표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저도 잘 이해돼요. 이를테면 교차로에서 경찰이 제 차를 정지시킨다면, 그건 교통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만나는 경찰에게는 내면이 없어요. 하지만 그 경찰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부터 내면이 생겨요. 사랑하면 그 내면은 중층적인 깊이를 띠게 됩니다. 상대적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고독해질 수밖에 없어요. 가족 안에서 우리는 이 고독을 느껴요. 부모와 자식은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에 버금가는 게 바로 연애하는 남녀죠. 우리는 대개 자기밖에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일이 ..

M E D I A/책방 2024.12.09

노마드랜드

노마드랜드 P25.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승부가 조작된 게임에서 지느라 너무 많 은 시간을 써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스템을 뚫을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 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밴과 RV, 트레 일러로 이주해 들어가 좋은 날씨를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했 고, 계절성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연료 탱크를 채웠다. 린다는 그 부족의 일원이다. 린다가 서부 근처로 이주하는 동안 나는 그를 따라 다녔다. P55. 나는 린다의 이야기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주의 깊게 들었다. 그 러면 사라지지 않는 몇몇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서였다. 어떻게 해서 열심히 일하는 예순네 살 여성이 결국 가진 집도..

M E D I A/책방 2024.03.25

한 사람의 마을

P35. 처음으로 내가 혼자임을 느꼈다. 그것들이 무리 지어, 연결되어, 더 미를 이루어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무리는 수십 리 떨어진 황사량 02※ 마을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을 사람들은 나를 도울 수 없었다. 나의 벗과 친지는 나를 도울 수 없었다. 나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마을에서 딸려온 것이었다. 군중 속에 있든 황야에 있든, 사람은 끝내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홀로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사람 혼자만의 것이다.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가 거대한 무리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쓸쓸히 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풀, 다른 벌레는 알지 못한다. 나무 한 그루가 말라 죽어간다. 그것은 잎도 꽃도 없는 고사목의 시기에, 삶보다 더 기나긴 시기에 앞당겨 들어섰다. 다른 나..

M E D I A/책방 2024.02.08

운의 알고리즘

1.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함.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한다. 2.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음. 이것을 '나태함'이라 한다. 3.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임. 이것을 '평온함'이라 한다. 4.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함, 이것을 '용기'라 한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바꿀 수 없는 것인지 구별하는 것을 '지혜'라 한다. 내가 만나야 할 귀인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알았다면 그이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도 좋다. 기독교인들이 '배 우자 기도'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배우 자 유형을 자세히 쓰고 매일 그런 배우자를 만나기를 기도하듯 '귀인 기도'를 해보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주파수가 발생하 면서 그런 귀인을 나에게로 끌어당겨줄 것이다. 또..

M E D I A/책방 2024.02.08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71. 내려오는 길은 어쩐지 더 짧게 느껴졌다.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나의 괴상한 애착과, 그가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내 인생을 되돌려놓을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에게는 내가 존경할 만한 많은 면들이 있었다. 그의 냉소."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꽃들에 대한 그의 몰두. 내 아버지의 쇠솔로 된 밀대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팔자수염. 그의 강철 같은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하지만 그 정도로 자기 확신을 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굳은살이 단단히 박히고 그 어떤 방해물에도 끄떡도 하지 않게 되면, 결국에는 한 여자의 목숨까지 끊어버릴 수..

M E D I A/책방 2024.02.08

낭송 장자

낭송 장자 2-8 박색이 사랑받는 이유 양자가 송나라에 갔다가 여관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 습니다. 여관 주인에게는 두 명의 첩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아름다웠고, 다른 한 명은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못 생긴 쪽이 더 대접을 받고, 아름다운 쪽이 더 박대를 받 고 있었습니다. 양자가 궁금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관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니 예뻐 보이지 않더군요. 못생긴 여자 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여기니 미워 보이지 않더군요." 그 말을 들은 양자가 말했습니다. "제자들아, 기억해라. 어질게 행동하면서도 자신이 어질 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디에 간들 사랑 받지 않 겠느냐?"_ 산목 2-9 빈 배와 다투는 사람은 없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와..

M E D I A/책방 2024.02.08

노인과 바다

P49. "내가 녀석을 낚은 게 정오였지. 그는 말했다. "그런데 결코 녀석을 보지 못했었군." 그는 고기가 갈고리에 걸리기 전 머리에 밀짚모자를 세게 눌렀었는데 그것이 이마를 파고들었다. 그는 너무 목이 말랐기 에 무릎을 꿇은 채, 낚싯줄이 급격히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면 서, 할 수 있는 한 멀리 뱃머리로 움직여 한 손을 물병으로 뻗었 다. 그는 그것을 열었고 조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 뱃머리에 기 대어 쉬었다. 그는 떼어 낸 돛대와 돛에 앉아 쉬면서 오로지 견 뎌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뒤를 살폈는데 눈에 들어오는 땅이 없 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언제든 아바나의 불빛으로 들어올 수 있어. 해 지기 전까지는 아직..

M E D I A/책방 2024.01.10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P27. 인간, 사이의 존재 선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늘은 무형 이고 땅은 유형이다. 하늘은 무형이라 광대무변하다. 땅은 유형이 라 두텁고 친근하다. 인간은 단어 자체가 이 '사이에서' 존재한다 는 뜻이다. 두 발로 서게 되면 시선은 하늘, 곧 무형의 세계를 바라 보되 두 다리는 땅에 안착해야 한다. 땅을 디딘 채 하늘을 응시하 는존재.이것이 인간이다. 땅은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이것이 생활의 원리다. 생활은 모 름지기 그래야 한다. 하늘은 무한하고 무상하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인식의 지평이다. 그것은 광 대무변하고 걸림이 없어야 한다. 땅의 두터움과 하늘의 가없음을 동시에 누릴 때 삶은 비로소 충만하다. 땅에만 들러붙어 있으면 '중력의 영..

M E D I A/책방 2024.01.10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주역 심리학

이야기로서의 삶, 그리고 주역 P17. 미국의 정신의학자 밀턴 H. 밀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세상에 자기만의 서사를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한 논문에서 "지구상의 서사는 무한하다"라고 썼는데, 난 그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서사는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사회에 극히 무수한 형식으 로 존재한다. 모든 인간 계급, 모든 인간 집단은 고유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상반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다 함께 그 서사를 즐긴다. 이때 범세계적이고 범역사적이며 범문화적인 서사는 곧 삶이다"라고도 했다. 서양의 역사에서 그가 말하는 서사의 근간은 기독교 사상의 뿌리인 헤브라이즘과 그리스 ..

M E D I A/책방 2023.12.20

가녀장의 시대

P9. 사람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해설했고 그것은 가부장의 말이었다. 감히 내 말을 부정하는 것이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어린 슬아는 선택해야 했다. 속을까 말까. 그는 빠르게 속기로 한다. 화선지에 바르게 '아들 자'와 '놈 자'와 '효도 효' 같은 글자를 쓴다. 효녀인 듯 유년기를 보낸다. 어쨌거나 할아버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P40. 그후로 팔 년이 흘렀다. 집안은 슬아 중심의 가녀장 체제로 제배치..

M E D I A/책방 2023.12.20